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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방사선 의학산업
   
개요
  국산 X선기계 제조업의 효시는, 1945년 패망한 일본의 島津제작소 출장소를 인수받아 시작한 고려X선기계공업사이다.(당시 대표 박양규) 고려X선기계는 1956년 최초 국산 X선기계 KX-2F 등 100mA 60mA, 30mA를 조립 제작한 실적이 있었으나, 도시계획 구역내의 사무실이 철거되는 바람에 해체되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성신X-ray공업사(이성철)에서도 같은 기종의 X선 장치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후반의 이 두 업체는 우리 나라 X선장치 회사의 시초이다. 1960년대에 들어와 X선장치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제조업체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고 완제품의 제조뿐만 아니라 부품만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업체도 생겨났다. 1960년대 초반의 업체로는 중앙(한원국), 서울(최영수), 수도(양윤형), 한일(한순식), 동양(박동식), 동신(은달동), 극동(김기태), 동아(문명화), 신신 등이 있었으며 고압트랜스를 제작하는 업체로는 동인(김정근), 한성전자의료기(김봉제), 중앙(이양구, 박병인)이 있었다. 1960년대 중반의 업체로는 무극(박연출), 국제(박성관), 이화(이겸차), 중앙(이안부), 한성전자의료기(김봉제) 등이 새로이 업계에 진입하였으며 1964년 경찰병원에 tilting table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1960년대 후반에는 동인(김정근), 동은(황종섭)이 새로이 등장하였으며 이때부터 장치의 용량이 점차로 커져 200-300mA 정도가 생산되기 시작하였으며 자기정류에서 단상전파정류로 전환되었으며 태엽식타이머에서 전자식타이머로 바뀌기 시작한 것도 이 당시가 된다. 1968년에는 최초로 회전양극식 X선관이 선보인 해이기도 하다. 1967년에는 보건사회부에서 20mA 장치를 발주하였는데 최영수는 20대를 일괄 생산하여 납품하였다. 이것이 X선장치의 대량생산의 효시가 아닌가 한다. 1967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산 기계들이 수입되기 시작하였는데 연간 20-30대 정도가 수입되었다. 1971년 보사부는 무허가업체들을 정비하기 시작하였고, 1972년에는업체들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그리하여 통합, 극동, 중앙, 성신, 경일, 동아만 남고 모두 폐쇄되는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무허가업체 정비는 수입업체의 활성화를 가져왔고 외제기계에 대한 금융지원 혜택까지 있어 외제기계가 범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에 국산기계에 대한 지원은 전무한 상태였다. 1979년 2차 통폐합이 있었고 이후 동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회사가 폐업하였다. 1980년대부터는 동아, 이화, 삼성, 성신 등 몇몇 업체가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후에 동아가 크게 발전하였다.
   
회사별 변천
  고려X선기계를 처음 설립했던 박양규가 1968년 8월 현대방사선기계공업사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였다가 1972년 12월 방사선기기 업체 통폐합방침에 따라 통합 방사선상사로 명칭을 바꾸고 30mA - 200mA기기를 제조 판매하였다. 1977년 - 1978년에는 보사부 수요 방사선기계 150mA를 각각 19대, 34대 조달청에 납품하였다. 1983년 7월 다시 현대방사선기계공업사로 명의를 변경하고 보사부로부터 200mA, 100mA, 60mA, 30mA의 진단용 X선발생장치의 제조허가를 받아 조달청에 납품하는 등, 당시의 대표적인 국산 기계업체였다. 1983년 7월에는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 공장에 입주한 후 이동형, 고정형의 X선촬영장치 5개 품목 제조허가를 받아 300mA, 500mA의 X선기계 제조허가를 취득하고 1987년, 1988년에 걸쳐 일본 Fukuoka방사선주식회사의 대리점 계약 체결, 보사부장관 의약품 수출입 허가를 취득하는 등 활발한 제조 및 생산, 판매 실적을 올렸다. 1990년부터는 진단용 X선장치 500mA, 300mA R/F TV system, 10mA 치과 X선 장치, 20mA 이동형 포터블 장치 등을 제조하였으며, 1991년에는 경기도 파주군에 공장을 건설하고, 보사부 수요 전국 보건소 납품용 X선촬영기, 국방부 군수요 의료장비 등을 납품하였다. 현재 진단용 X선장치 600mA 등의 품목 제조허가를 취득하고 있으며 1986년부터 동남아지역, 남미, 호주 등지에도 장비를 수출하고 있다. 1953년에 설립된 아시아방사선기계공업사(현재 부산시 사하구 장림동. 대표 김기태)는 초창기에 6.25전쟁 직후 주한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폐기 장비들을 개조 정비하여 공급하다가, 1958년 부산시 서구 토성동에 극동X선상사란 이름으로 발족하여 30mA 및 60mA X선발생장치기계를 조립 판매하였다. 극동X선상사(지금의 아시아기계공업사)는 보사부 허가 81호로 300mA/100kVp X선기계 등 3개 종목의 품목 허가를 받았다. 이후 1984년 9월 18일 보사부 시책에 의거 부산, 대구의 3개회사의 통합으로 극동X선기계공업사에서 통합 아시아방사선기계공업사란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고 100mA에서부터 500mA/150kVp R/F TV 기종 등 다양한 품목의 제조허가를 받아 현재까지 국산 X선장비기기를 제작 판매하고 있다. 동아X선기계공업사는 1960년 7월 대전에서 부품을 단순 조립하는 수준의 영업으로 시작하였다. 1979년 X선 기기의 사전 검사 제도가 신설되는 환경에서 외국으로의 수출로는 처음으로 파키스탄에 기계 2대를 수출하고 충청남도 대덕 신탄진에 공장을 1980년 4월 완공하였다. 1983년 독자적인 DXG-5125 model을 개발하여 10년 동안 이를 주력 제품으로 생산하여 1985년 3월에는 국세청장 표창을, 11월에는 수출의 날 공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1985년 9월 주식회사 동아X선기계로 법인 전환하고 1986년 6월 충남 마전에 대규모 공장을 신축하였다. 1986년 12월 필리핀 보건부 국제입찰에 참가 총 93대 75만 달러의 수출을 성공시켜 업계 발전에 기여하였다. 1991년 11월에는 멕시코 국제 입찰에 500mA/125 kVp R/F TV 기종으로 100만 달러의 입찰 실적을 올렸다. 연구소의 활용으로 1993년 3월에는 C-arm 장비의 국산화에 성공하였으며 조세의 날에는 철탑 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현재 창립 34주년의 중요한 국산 방사선기계 공급업체 중의 하나이다. 금성의료기는 일본 Toshiba 제품의 X선기계, 중외기계는 일본의 Hitachi의 기계를 조립 국내 공급한 바 있다. 1980년대 미국의 General Electric과 합작 설립된 삼성의료기는 X선발생장치 및 X선 관련부품을 생산하여 수출한 바 있다.
  1967, 1968년경에 서울, 부산, 대구에 최초로 500mA 미국 GE(General Electric)회사의 기계가 수입되었다. 당시로서는 최고급 기종인 이 장비는 이경용방사선과(부산), 경북방사선과(대구), 로내과의원(서울 종로구)에 설치 운용되었고 같은 기종이 용산 미8군병원 내에도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범양의료기기사 기록 참조) 이와 같이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의 투시 및 촬영이 이미 방사선 개업가에서 이루어지면서 경쟁적으로, 국내 X선 관계 의료사업도 활발해지면서 국내 전자부품의 품질, 공급 또한 향상되고 용이해졌다. 1970년대 당시만 해도 국산 X선 기자재에 대한 제작규정 기준이 없어, 처음 생산되는 과정에서부터 작업장 기능공에게 산업재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병원의 기사는 물론 환자에게도 많은 방사선 피해를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의학신보 1973.6.14일자 21호 근거) 이때부터 강력한 규제의 필요성이 의학 관계자들에 의해 지적되었다. 1976년 9월 15일 대한영상의학회와 대한방사선사협회의 대표가 보사부를 방문하여 국산 X선기기의 규격화에 대한 규정 마련을 요청하게 되었고 1976년 12월에는 보사부가 진단용 X선장치의 제조 공급기준을 제정하였다. 이 기준에 따라 기계 제작업체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다.
   
방사선 기계의 안전성에 대한 대책 마련
  1973년 6월 14일 의학신보의 기사 내용에서 밝힌 의료기기 특히 방사선기기의 안전성 문제는 기사가 발표된 이후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보건사회부와 대한의학협회의 의료용구 수급에 관한 질의에 따른 대한영상의학회의 답변에서도 "국산 조립 진단용 X선발생장치는 200mA 이상의 기기는 그 안전도가 불충분하다"고 언급하고 안전한 진단용 X선발생장치의 개발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책을 건의하였다. 이러한 X선 기기를 둘러싼 방사선 의학계와 기계 제조업체간의 계속된 논쟁의 결과, 1976년 8월 대한영상의학회와 대한방사선사협회가 공동으로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지의 X선기기 제조업체와 이미 제조된 X선기기의 실태를 조사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 조사 팀의 조사 결과, " 국산 X선장비 제조과정은 수공업 단계에도 미치지 못한 실정"이란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를 계기로 1976년 9월 15일 대한영상의학회와 대한방사선사협회의 대표가 보사부를 방문하여 국산 X선기기의 규격화와 국산 X선기기의 제작이 정밀화될 때까지 외국산 수입금지 조치를 해제해 줄 것을 건의하였다. (1976년 12월30일 의학사 581호) 이와 같은 방사선 관계자들의 활발한 활동과 건의에 의한 결실로, 이 시기에 극동X선기계공업사, 현대방사선기계공업사, 동아X선기계공업사 등의 국산 기계업체의 질적 향상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1976년 12월 12일 극동X선기계공업사의 300mA, 100mA, 60mA 등 의료용구 제조업 허가(X선 기계제작) 등록이라든지, 같은 해에 현대방사선기계공업사는 조달청 국산장비 권장 내자 등록을 하고, X선 진료용 장갑, 방호용 앞치마 제조 품목허가 300-500mA 의료용구(X선 기계제작) 취득이 이루어 졌고 이듬해엔 보사부 수요 방사선기계(150mA) 19대, 암실 기자재 121세트 등이 조달청에 계약 납품된 것으로 보아 이때 이미 활발한 국산 X선장비의 제조공급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가 있다. 동아X선은 1979년 6월에 파키스탄에 기계 2대를 수출함으로써 해외시장 개척의 관심으로까지 발돋움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신 컴퓨터 방사선 장비의 국산화
  1977년 CT가 경희의료원에 최초로 도입된 후, 198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MR, CT, DSA, 초음파, EKG 모니터 등 의료기기의 국산화 시대를 위하여 빠른 템포의 국내 의료기기 산업이 발전되었다. CT 등 고가의료장비의 설치규제가 국내에서 조립한 기종에 대하여는 적용이 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삼성의료기, 중외기기 등에서 소규모 CT를 조립생산하여 중소 병원에 다수 공급하였다.
  MR의 개발에 있어서 우리 나라는 미국, 영국, 서독, 일본 등과 경쟁을 하고 있었다.(참조 기사; 의학신보 1982.12.30) 당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조장희 팀에 의하여 개발되고 금성의료기에서 제작된 상전도형 MR Spintom - 1500R(0.15 T)이 1984년도 6월15일에 영등포 신화병원에 설치되었고 같은 해 12월 31일에는 부산 위생병원에 2호기가 설치되었다. 이러한 국산화 MR의 개발로 금성사는 1984년 10월 한국 전자전 신제품 특별 전시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초전도형 자기공명영상장치는 KAIST와 금성사의 공동 연구로 1986년 3월부터 개발에 착수, 1988년 5월에는 초전도 MRI 1호 Spectro 20000(2.0 T)이 서울대학병원 진단방사선과에 설치되었다. 1989년에는 초전도 MRI 2호 Supertec 5000(0.5 T)기가 서울대학병원에, 2.0 T인 3호기가 계명대학병원에 설치되었는데 특기할 만한 사항은 여기에 이용된 2.0 Tesla는 당시 최고의 강력한 자장을 보유한 장비로서 이와 같은 최고의 첨단 장비가 순전히 우리 연구팀에 의하여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CT의 연구개발은 MRI의 연구개발에 비해 상당히 저조하였다. 기록상으로는 금성사에서 국내 최초로 두부(Brain)용 전산화단층촬영장치인 TCT-30A를 1985년 10월에 개발하여 보사부로부터 제조허가까지 취득하였고, 전신용 TCT-300이 1988년 3월에 개발 완료되었다고 하나(금성의료기기 제조역사 참고자료) 임상에서 사용된 국산 CT에 관한 자료나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DSA 기종의 국산 장비에 관하여는 1980년도부터 서울대학병원 의공학과와 진단방사선과 팀이 개발에 착수한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 DSA 기종을 1983년에 성공시켜 중외기계에서 상품화하였다. (의학신보 1983.4.21 참조) 1969년 원자력병원에 B-scanner(Aloca MSU-6)가 국내 최초로 설치된 이후 초음파 국산화의 변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회사는 1985년 7월에 설립된 메디슨을 들 수 있겠다. KAIST의 연구원이었던 이민화를 대표로 설립한 주식회사 메디슨에서 생산한 초음파기기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 많은 양이 수출되어 정부로부터 기술진흥확대회의 산업포상 등 많은 포상을 받았다. 1986년 이후 메디슨은 계속 성장하여 국내 초음파기기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고 1986년 터키에 첫 수출을 개시한 이후 1990년에는 미국 FDA의 승인을 얻어 내었으며 SA-88 포터블 기종 소형 초음파진단기도 개발하였다. 1992년에는 SA-1500 기종으로 1000만 달러 수출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하였고 해외 Joint Venture 회사를 미국, 독일, 중국, 러시아에 설립하였다. 1990-1993년 기간 중에는 국내시장 초음파기기 점유율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의료기는 1995년 경기도 성남시에 새로운 공장을 지어 이전하고 CT와 초음파진단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보조 장비
  방사선 관련 보조장비 중 View box는 현재 8개 정도의 생산업체(계림, 동강무역, 동강의료기, 동아, 필립스 산업 코리아, 기타)가 있으며 근래에 와서 품질이 향상된 제품이 더욱 활발하게 공급되고 있다. 국산 Injector Syringe는 동방의료양행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자동현상기는 두산과 정원정밀에서 공급하고 있다. 그리드는 원메디칼교역과 정원정밀, 필립스산업 코리아에서 생산하고, 카세트는 정원정밀, 필립스산업 코리아에서 생산하고 있다.
  카테타, 스텐트는 대부분 외국제품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나, 특기할 만한 국산화된 품목으로는 현재 수호메디테크에서 제작 판매하고 있는 Song's stent를 들 수 있겠다. 1991년 송호영에 의하여 개발된 금속성 팽창성 스텐트는 식도 협착의 치료에 이용되고 있으며 이미 미국 특허를 획득한 상태이다. 상품화된 Song's stent는 국내에서 널리 사용될 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수출하게 되어, 수입에만 의존하던 풍토를 개선, 이러한 의료보조기구를 순전히 우리 나라의 기술로 만들어 수출을 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94년 상품화된 Lacrimal 스텐트도 송호영에 의하여 1991년부터 임상 실험을 거쳐 개발되었으며 현재 Cook 회사에 의해 제작 판매되고 있다. X선 필름은 과거 잠시 외국에서 생산된 원단을 수입하여 절단 공급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현재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조영제 산업계 X선 관련
  조영제, 특히 혈관조영제는 국내 생산시설 완비의 어려움이나 특허권 문제 등으로 외국에서 개발된 약품을 대부분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6·25 직후에는 대부분의 조영제가 군에서 유출된 것으로 사용되었고 일부 업자들에 의하여 수입되기도 하였다. 현재 한국쉐링이 독일 쉐링제품을, 고려상사가 미국 Mallinckrodt사 제품을, 일성신약이 이태리 Bracco사 제품을, 태준제약이 프랑스의 Guerbet사 제품을, 신기양행이 미국 Winthrop사 제품을, 한국 Nycomed가 노르웨이 Nycomed사 제품을 수입 판매하고 있다.
  한국쉐링은 1967년 10월에 설립되어 수용성조영제 Urografin, 담도계 조영제 Biloptin, Biligrafin, Biliskofin, 경구용 수용성조영제 Gastrografin 등을 수입 공급함으로 시작되었으며 1987년 후반에 조영제 생산 시설을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가동하여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이온성조영제를 생산하였다. 이와 같이 국내에서 생산된 조영제는 수입된 조영제와 같이 국내 여러 병원에서 이용되었다. 1989년부터는 MRI용 조영제 Magnevist를 국내에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외국제품의 조영제를 공급하는 다른 업체로는 미국 말린크로트 제품을 수입하여 공급해 온 1980년에 설립된 고려상사가 있다. 일성신약은 1967년 독일회사와의 합작으로 설립되어, 이탈리의 Bracco 회사와의 공동 개발로 이오탈람산 메글루민 주사액을 최초(1989년 11월)로 국내생산을 통하여 공급하였다. 태준제약은 1978년 태준상사로 출발하여 위장관 조영제인 일제 Baritop과 발포정을 수입하여 국내에 공급하기 시작하였고 1983년 의약품 제조업체 태준제약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1984년 경기도 용인에 공장을 세웠다. 1985년과 1986년에는 국산 조영제 그리고 조영보조제 발포 과립 개발에 성공하였다. 1987년에 위장관 조영제 바리탑 140%를 개발하고 우리 한글 상표로 1989년부터 외국에 수출하였다. 1990년 바리탑을 솔로탑으로 제품명을 변경하여 완전 국산화된 고품질의 경구 조영제를 국내 병원에 공급하고 있으며, 일본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중국에 공급계약을 체결하여 1995년 6월 계약분 1,000,000캔 중 1차분 100,000캔을 선적하여 국내 기술을 과시하였다. 또한 현재 국내에 공급하고 있는 프랑스 Guerbet사 제품 혈관 조영제를 국내에서도 생산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비이온성 조영제는 1990년도 초반부터 전량 외국에서 수입되어 혈관용 조영용 등 여러 방사선학적 검사에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