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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방사선의학재단
   
설립배경
  대한영상의학회는 대한의학협회 산하 대한의학회의 분과학회로서 임의단체이기 때문에 학회의 세무처리는 상급단체이며 법인체인 「사단법인 대한의학협회」에 의존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실제로 이용되지 못했다. 1970년대 까지는 학회 회원수도 적고 학회 경상비의 규모가 적어 이사장의 개인 구좌를 가지고도 학회 운영이 가능하였다. 또한 광고비를 포함한 업계의 기부금 역시 규모가 적어 세무처리를 위한 영수증 발급 없이 기부하여 왔으나 학회 기금의 증가와 업계 기부금에 대한 영수증 발급의 필요성 증가, 학회 운영 경비의 증가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재단의 설립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대한영상의학회는 1983년 정기총회에서 상임이사제를 도입하였고 업무의 전문화를 통하여 본격적인 도약을 시도하였다. 학회 집행부와 김주완을 비롯한 학회 중진들의 주장으로 재단을 설립키로 하였으며 1984년 3월 23일 정식으로 보건사회부의 인가를 받아 「재단법인 한국방사선의학재단」이 설립되었다. 초대 이사장에는 김주완이 선임되었고 당시 자본금은 60,000,000원 이었다. 대한영상의학회가 회원들의 모임으로 재단을 설립한 것은 분과학회로서는 대한소아과학회에 이어 두번째이며 아직도 재단을 설립하지 못한 학회가 대부분이다.
  설립당시의 재단 임원은 다음과 같다.
 
이사장 : 김주완
이 사 : 김순용, 김종우, 박수성, 박용휘, 박창윤, 서원혁, 윤종섭, 이면상, 진수일, 한만청
감 사 : 김기정, 서정호
   
한국방사선의학재단의 활동
  재단 설립 초기의 수입원은 대한영상의학회지 광고비로 업계로부터 받는 기부금과 출연금 이자수입이 전부였으나 점차 학술대회의 내용이 다양화되면서 학술대회시 함께 진행되는 기기 전시 부스사용료, "Technical Forum", "What's New?" 등에서의 찬조금 등도 수입의 일부가 되었다.
  이외에 1987년에 개최된 제5회 아시아대양주방사선의학회와 1993년에 개최된 제1회 아시아태평양심혈관 및 중재적방사선과학학술대회 개최후의 잉여금이 재단 수입이 되어 학술진흥 특별회계로 운영되고 있다. 또 1992년 이후 독일 (주)쉐링으로부터 매년 미화 30,000불의 연구기금을 수령하여 회원들에게 연구비로 지급하고 있다.
  1994년 대한영상의학회 회원들의 숙원사업이었던 회관을 한국방사선의학재단 이사장(한창렬; 韓昌烈)명의로 구입하였으며 재단 및 학회 사무실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 부분에 대한 임대 수입이 또 하나의 재단 수입이 되었다.
  재단의 지출은 재단의 일반관리비를 제외하고는 대한영상의학회지의 발간 보조비, 각종 시상비용 등을 지원하는 대한영상의학회의 지원금이 대부분이며 이를 학회에서 집행하고 있다. 기타 한국방사선의학재단 회관의 유지비용은 회관의 임대료 수입에서 지출되며 별도 회계로 처리되고 있다.
  따라서 회관 설립 이후의 재단 회계는 비영리부분과 영리부분으로 나뉘고 비영리 부분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로 나뉜다. 일반회계는 재단 직원의 급여, 사무실 유지비를 포함한 일반관리부문과 학회지 발간비 보조비를 포함한 대한영상의학회 학술활동을 지원하는 사업부문으로 나뉜다. 특별회계는 다시 학술진흥기금, 회관건립기금 및 퇴직금 적립금 등으로 나뉘어 해외저술상을 비롯한 시상금 및 외국 석학의 초청비용 등이 학술진흥기금에서 집행되고 있다. 영리부분은 임대료 수입 및 회관 유지비 등을 다루는 부분이 된다. 재단의 설립으로 업계로부터의 각종 찬조금, 회원들의 회관건립기금들이 세무처리가 가능하여지고 자금의 흐름이 정상화되어 대한X선검진협회의 재정지원과 함께 대한영상의학회의 경제상태를 호전시켰다. 또한 1984년 7월 채영석을 한국방사선의학재단 직원으로 채용하였고 재단사무실을 개설하여 재단 사무와 함께 대한영상의학회 사무를 전담시킴으로서 과거 회장, 이사장, 또는 상임이사가 맡아서 하던 사무업무가 학회 사무실 중심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