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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대한핵의학회
   
연혁
  1958년 3월 원자력법이 제정되고 1960년 4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 동위원소진료실이 개설되면서 우리 나라에서 원자력의 의학적 이용이 시작되었다. 1961년 11월에 대한핵의학회가 발기되고, 동년 12월 28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강의실에서 43명의 회원으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초대회장에는 이문호, 부회장에 황기석이 선출되었다. 1966년에 소규모 국제핵의학회를 국내에서 개최하였으며, 제3차 아시아대양주핵의학회를 대한핵의학회 주관으로 1984년 8월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1985년부터는 대한핵의학회 학술대회에 연수교육 강좌를 신설하였고, 1990년부터는 연2회씩 전공의를 대상으로 1일 코스의 연수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한편 학문적인 연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학술상을 제정하여 대한핵의학회 Abbott상(1986년), Daichi상(1989년), Dupont상(1994년)를 연1회 시상하고 있으며, 1986년 이후 핵의학발전을 위한 워크샵을 8차례 시행하였다. 1993년 3월부터 법령의 개정이 추진되어 종합병원에서 독립된 진료과목으로 핵의학과를 설치하게 되었다. 1995년 1월 국무회의에서 핵의학 전문의제도 신설이 의결되어 핵의학 전문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조직구조
  1961년 11월 이문호, 이장규, 민병석, 고창순, 황기석, 이민재, 김동수 등 7인이 대한핵의학회를 발기하여 같은 해 12월 28일 70명의 회원으로 창립되었다. 조직구조는 회장 부회장만으로 구성되어 초대회장에는 이문호, 부회장에는 황기석이 선출되었다. 조직구조의 변천과정을 보면 창립당시의 회장, 부회장제도에서 1966년 부회장이 2인으로 되었으며 1967년 제6회 학술대회에서부터 회장, 부회장(2인)에 총무부장과 학술부장 및 약간명의 이사들로 구성되어 당시 총무부장에 이장규, 학술부장에 고창순이 선임되었다.
  대한핵의학회의 발전에 따라 1971년에는 총무 및 학술이사의 상임이사제를 채택하였고, 1976년에는 부회장이 차기회장이 되기로 하였고, 명예회장제와 이사장제를 채택하였다. 1984년에는 이사제를 평의원으로 개편하고 총무, 재무, 학술, 간행, 보험이사를 신설하였다. 그리하여 임기 2년제의 회장은 학회를 대표하여 총회 및 평의원회의 의장이 되고 임기 3년의 이사장은 이사회의 의장이 되어 학회의 실무 업무를 수행, 총괄하게 되었다. 그리고 임원선출, 예결산심의, 정관개정 및 기타 회의 50-100명으로 구성된 평의원회에서 토의 결정된다.
  1993년부터는 학회업무가 다양화, 국제화되고 유관기관과의 협조가 필요하며 핵의학 검사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학회 내에 대외협력이사와 정도관리이사를 추가로 두었으며 또한 3명의 일반의사를 두어 업무의 효율화를 기하였으며 각 이사 밑에 1인씩의 이사보를 두게 되었다. 역대회장 및 임원의 연도별 명단은 다음 표와 같다.
  표 6-1-9. 역대 임원단
 
연도 회 장 부회장 이사장 총 무 재 무 학 술 간 행 보 험 감 사 대외
정책
정도
관리
일반(3)
1961 이문호 황기석                    
1966 이문호 황기석
서칠성
                   
1967 이문호 황기석
박용휘
                   
1968 이문호 황기석
박용휘
  이장규   고창순
이 사 : 서칠성 고창순 민병석 이장규 홍창기
이민희 문효중 최병욱
1969 이문호 이장규
민병석
  고창순    
이 사 : 고창순 박용휘 안승봉 황기석 문효중
1970 이민화
홍창기
이문호 이장규
박용휘
                 
1971 이문호 이장규
박용휘
  고창순   김동집
상임이사 : 이문호 이장규 황기석 서칠성 민병석
박용휘 박종갑 최용규 이민재 김동수
고창순 김동집 박수성 김목현 성호경
1972 이문호 이장규
박용휘
                   
1973 이문호 이장규
박용휘
                   
1974 이문호 이장규
박용휘
                   
1975 이문호 유방현
박창윤
  고창순   김동집            
1976 이장규 민병석 고창순                  
1977 이장규 민병석 고창순                  
1978 민병석 박용휘 고창순                  
1979 민병석 박용휘 고창순                  
1980 박용휘 황기석 고창순                  
1981 박용휘 황기석 고창순                  
1982 황기석 박창윤 고창순                  
1983 황기석 박창윤 고창순                  
1984 박창윤 박수성 고창순 조보연 이명철 강성구 정수교 김선우 노흥규
홍성운
     
1985 박창윤 박수성 고창순 조보연 이명철 강성구 정수교 김선우 노흥규
홍성운
     
1986 박수성 고창순 김동수 조보연 이명철 강성구 정수교 김선우 노흥규
홍성운
     
1987 박수성 고창순 김춘열 정수교 이명철 이성용 유형식 조보연 노흥규
홍성운
     
1988 박수성 고창순 김춘열 정수교 이명철 이성용 유형식 조보연 노흥규
홍성운
     
1989 박수성 고창순 김춘열 정수교 이명철 이성용 유형식   노흥규
홍성운
     
1990 고창순 이민재 노흥규 정수교 이명철 이성용 김삼용 정준기 이규보
조석신
     
1991 이민재 김춘열 노흥규 정수교 이명철 김종순 이명혜 정준기 이규보
조석신
     
1992 김춘열 김목현 노흥규 정수교 이명철 김종순 이명혜 정준기 이규보
조석신
     
1993 김춘열 김목현 이명철 손형선 정수교 김종순 임상무 정준기 이규보
조석신
김병태 이종두 김용기
전석길
김창근
1994 김목현 김지열 이명철 손형선 정수교 정준기 임상무 이종구 이규보
염하용
김병태 김종순 김용기
전석길
김창근
   
학술활동
 
1. 국내 학회 대한핵의학회
  학술대회의 시작은 1962년 10월에 제1차 대한핵의학회 학술집담회 및 방사성동위원소 의학적 이용강습회라는 명칭으로 개최되었으며 참석인원은 약 70명으로 주로 특정연제에 대한 발표가 있었고 1년에 1회씩 상기 명칭으로 1965년 8월까지 4차에 걸쳐 개최되었다. 1966년부터 정식으로 학술대회와 핵의학 집담회가 분리되고 명칭도 대한핵의학회 학술대회로 바꾸어 1966년 11월 5일 제5차 대한핵의학회 학술대회가 열려 27편의 일반논문발표 및 2편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이후 대한핵의학회 학술대회는 매년 1회씩 개최되었으며 1971년부터 연2회 학술대회를 개최키로 하여 1971년 5월 22일 제10차 대한핵의학회 춘계학술대회, 1971년 11월 26일 제10차 대한핵의학회 추계학술대회가 열렸는데 1972년까지 춘계에 심포지엄, 추계에는 일반연제(3편 정도) 등이 발표되었다.
  1975년부터 춘계학술대회에 정기총회 및 일반연제가 발표되고 추계학술대회에는 심포지엄으로 개최되었다. 일반연제 편수는 1981년부터 55-60편으로 증가하여 1991년부터는 포스터발표도 추가하게 되었다.
  학술대회 연제 수를 보면 제1회부터 10회 학술대회까지는 평균 30여편, 20회(1981년도) 학술대회에는 52편, 30회(1991년) 학술대회에는 74편이 발표되고, 1995년 제34차 학술대회에는 102편의 논문이 발표되어 매년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여 왔다.
2. 집담회 및 증례토의
  제1차 대한핵의학회 집담회는 1966년 3월 26일에 방사선의학연구소에서 개최되었고 이후 매년 1-2회씩 부정기적으로 개최되어 오다가 1985년 3월부터 매월 셋째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집담회를 개최하여 연7회씩 개최하고 있다. 매회 증례발표 및 토의를 하고 특강도 하고 있다.
3. 국제 학회
  첫번째 국제학회는 1970년 10월 28일 방사선의학의 최신동향에 관한 한일합동심포지엄을 갖고 총 10명의 연자가 주제를 발표하였다. 이어 1984년 8월 27일부터 4일간 제3차 아시아오대양주핵의학회를 서울 신라호텔에서 본 학회 주관으로 개최하였다. 총 25개국에서 700여명의 회원이 참석하였다. 1991년 5월 31일에는 대한핵의학회 창립 30주년 기념 국제핵의학심포지엄을 6명의 세계적 석학을 초청하여 서울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에서 개최하였다.
4. 학술상
  1968년 2월에 우수논문상 제도를 제정하여 이종헌에게 "폐스캔상의 임상적 고찰"이라는 논문으로 상금 일십만원을 수여하였다. 1986년에 대한핵의학회 Abbott상을 제정하여 매년 대한핵의학회지 발표논문 중 우수논문 저자를 수상자로 선정하여 상패와 부상으로 미국핵의학회 학술대회 참석비용으로 미화 3,000불을 지급하고 있다.
  1989년에는 대한핵의학회 Daiichi상을 제정하여 매년 대한핵의학회지 발표 논문중 우수논문 저자를 수상자로 선정하여 상패와 부상으로 일본핵의학회 학술대회 참석비용으로 미화 2,000불을 지급하고 있다.
  1994년에는 대한핵의학회 Dupont상을 제정하여 매년 춘계학술대회 발표 연제중 최우수 연제를 선정하여 상패와 부상으로 유럽핵의학회 학술대회 참가비로 미화 3,000불을 지급하고 있다.
5. 학술지 발간
  일에 "대한핵의학회잡지" 제1권 제1호가 창간되었다.
  창간호에는 대한핵의학회 회장이던 이문호가 창간사를 기고하였고, 국내원자력기구 부회장 Vettor H와 죤스홉킨스 의학연구소 부교수였던 Wagner HN Jr.가 축사를 기고하였다. 총 8편의 원저와 29편의 초록을 수록하였고, 학회소식을 게재하여 총 300부를 발간하였다. 창간호 발간 이후 매년 2회씩 대한핵의학회지를 발간하였고 1995년부터 연4회로 증간하였다. 편집체제는 1970년 4권 11967년 3월 1호부터 투고규정을 제정하여 사용하였고, 1984년 18권 1호부터 "대한핵의학회지"로 학회지 제목을 변경하였으며 1985년 27권 1호에서 개정을 하여 Vancouver Style로 발간하고 있다.
6. 전문의제도 신설
  우리 나라의 현 의료환경에서 핵의학의 사회적 요구와 변화 및 외국의 사례와 장래 전망, 그리고 학문적 의료적 독자성을 바탕으로 수급 및 수련계획과 함께 핵의학 전문의 신설의 시급성과 필요성이 인정되어 본 학회에서는 지난 10년간 수차례의 워크샵을 개최하고 학회의견을 모아 1990년 대한의학협회에 핵의학전문의 신설을 건의하였다. 그리고 1992년 9월 7일 본 학회 전문의제도 신설 추진위원회의 제안자료를 바탕으로 핵의학전문의의 시급한 설치를 대한의학회 주관 공청회에서 역설한 바 있다. 이에 핵의학 전문의 필요성이 공감을 얻고 각계의 협력과 이해아래 1995년 1월 보건복지부에서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에 관한 규정 개정령"(대통령령 14516호)을 공포하여 핵의학 전문의 신설이 확정되었다. 본 학회에서는 전문의제도 실시를 위한 고시 및 수련위원회를 구성하고 내년(1996년)부터 실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