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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대한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
   
연혁
  1922년 한국에 치의학이 최초로 소개된 이래 경성치과의학교,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에서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국립서울대학교 치과대학으로 이어져 와 한국 유일의 치과대학이 탄생되었다. 치의학 분야에서의 방사선과학은 일제하에서 치과X선학이라는 이름으로 전임교수도 없이 4학년에서 1학기 혹은 2학기가 강의되는 등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여 왔고, 치과대학 부속병원의 경우 1930년대에 도입되었던 Ritter사의 구내용 방사선촬영장치나 수동식 현상시설이 전부였었다. 1953년 9월부터 구강외과학 교실의 전임강사였던 안형규(安炯珪)가 치과방사선과학 강좌를 전담하여 강의 및 병원에서 임상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별도의 방사선과를 설치할 수 없어 구강외과의 소수술실 옆에 작은 방을 빌어 Ritter사의 구내촬영장치와 Fisher사의 구외촬영장치 및 온도조절이 가능한 현상장비가 도입되어 방사선실로서의 그 기능을 하였다. 6·25사변의 폐허를 딛고 미국의 차관기기가 속속 도입되면서 치의학 전반에 대한 국내외의 인식이 변화되고, 1955년부터는 학부에서 3학년부터 기초방사선원리와 촬영법, 판독법에 관하여 강의되었고, 학생 및 졸업생들의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1959년 6월 안형규가 중심이 되어 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었던 계단교실에서 대한치과방사선학회를 창립하였으니 이것이 지금의 대한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의 모태가 되었다. 1961년 안형규는 여러 가지 문헌을 참고로 두부고정장치를 제작하여 두부 X선 규격화촬영을 함으로써 X선 사진으로 안면, 치아 교합 등을 분석하고,
  1968년 유동수(劉東洙)가 군에서 전역하여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치과방사선과에 전임강사로 부임하였으며 1969년에는 박태원(朴兌源)이 군에서 전역과 동시에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발령되어 인적 자원을 충족시켰고, 1969년 12월 소공동의 구교사에서 현재의 연건동 캠퍼스로 대학과 병원이 이전하였으며, 동시에 새로운 장비들이 보강되었으니 Siemens사의 파노라마촬영장치와 Heliodent구내촬영기, 일본의 Asahi Roentgen사의 구내촬영기, 두개골 전체를 촬영할 수 있는 장치 등과 최신의 자동현상설비 등이었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서는 안형규와 유동수가 중심이 되어 대학원과정을 개설하게 되어 현재까지 100여명의 전공생들을 배출하였고, 1961년부터 시작되었던 전공의 과정에서 박태원을 처음으로 하여 매년 1-2명씩을 배출하였다.
  명맥만을 유지해오던 대한치과방사선학회는 여러 회원들의 뭉쳐진 힘이 활성화되어 학회지 "치과방사선" 1권 1호가 1971년 12월에 발간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국내활동으로서 연차 총회 및 학술대회를 개최함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1973년 4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되었던 제3차 국제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Dento-Maxillo-Facial Radiology)에 안형규가 참가하였고 2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유동수가 일본 오사카 치과대학에서 1년간 치과방사선과학에 대하여 공부하고 귀국하였으며 이어서 1974년 박태원이 일본 문부성의 자금지원을 받아 오사카대학 치학부 치과방사선과학교실에서 1년간 연구 후 귀국함으로써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서는 치과방사선학의 교육, 진료, 연구가 활발하게 되었다.
  1974년 유동수가 안형규의 뒤를 이어 학회장이 되었고, 학회 명칭도 대한악안면방사선학회라고 개칭하였다. 1967년에는 경희대학교, 1968년에는 연세대학교에 치과대학이 설립되었으나 교수 요원이 부족하여 본 학회에서 학부강의 등을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1975년 이상래(李祥來)가 경희대학교에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치과방사선학교실을 창설한 것을 시작으로 연세대학교에 김한평(金漢平)이, 경북대학교에 최순철(崔珣哲)이, 조선대학교에 김재덕(金在德)이, 부산대학교에 나경수(羅慶秀)가, 전남대학교에 고강(高鋼)이, 전북대학교에 고광준(高光俊)이 단국대학교에 김은경(金恩敬)이 각각 치과방사선학교실을 개설하였고, 최근에는 강릉대학교에도 치과대학이 설치되기에 이르러 본 학회로서는 원광대학교와 강릉대학교 치과대학의 치과방사선학교실의 개설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1974년 유동수가 학회장이 되면서 일본치과방사선학회와의 유대강화의 일환으로 1980년에는 이상래가 기후치과대학의 강사로서 1년간 연구 후 귀국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양국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짐으로써 1984년에는 매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양국의 공동으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데 의견을 모아 그 해 여름 일본의 기후치과대학에서 제1회 한일 공동세미나가 개최된 이래 1993년 Kagoshima에서의 제8차 한일 공동 세미나를 끝으로 하고,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지역국가들의 건의를 받아 들여 1996년부터는 Asian Association of Oral and Maxillo-Facial Radiology로 확대 개편되어 그 첫 모임을 일본에서 가지기로 합의된 바 있다. 국제적으로도 1974년 Kyoto에서 열었던 제3차 국제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 참가를 시발점으로 하여 매 학회마다 대표를 파견하였고, 연제를 발표하던 중 1985년 제7차 London학회에서 박태원이 아시아지역을 대표하여 regional director가 되었고, 1988년 미국 Texas San Antonio에서 열렸던 제8차 총회에서 1994년의 제10차 국제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를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위임받기에 이르렀다. 1991년 헝가리 Budapest의 제9차 총회에서는 유동수가 국제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 차기회장으로, 박태원이 부회장으로, 이상래가 아시아지역 regional director로 각각 선출되어 본 학회의 국제적인 위상이 더욱 향상되었다. 이러한 국제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1994년 6월 25일 제10차 국제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 총회 및 학술대회가 유동수를 조직위원장으로 세계 30개국에서 4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의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조직구조
  1959년 6월 대한치과방사선학회 창립당시에는 회장, 총무, 감사 각 1명과 간사 약간 명으로 구성되었다. 초대회장에는 안형규, 총무에 유동수, 감사에 박기호(朴 晧)가 선출되었고 16명의 회원으로 시작하였다. 1973년 대한악안면방사선학회로 개칭하였으며, 1984년 대한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로 조직되어 고문, 명예회장, 회장, 부회장, 총무, 학술, 재무, 섭외, 국제, 편집, 공보, 보험이사, 이사, 감사 등의 임원진을 갖추게 되었다. 역대회장 및 임원진은 다음 표 6-1-1. 과 같다.
  표 6-1-1. 역대회장 및 임원진
 
회장성명
(임기)
고문 명예회장 부회장 임원
안형규
(1959-1974)
    유동수 박기호, 이현만, 이병윤, 최희섭, 박태원
유동수
(1975-1979)
  안형규 박기호 이현만, 이병윤, 최희섭, 박태원, 이상래
박기호
(1980-1981)
안형규 유동수 이현만, 이병윤 최희섭, 박태원, 이순표, 주관철, 이재희,
이유동, 김현주, 이기택, 강우곤, 김한평,
이기식
박태원
(1982-1983)
안형규, 유동수, 이현만, 이병윤, 최희섭 박기호 주관철, 이상래 이재희, 강우곤, 김한평, 김재덕, 박창서
유동수
(1984-1987)
안형규, 이현만, 이병윤, 최희섭 박기호 주관철, 이상래 박태원, 이민영, 박창식, 김한평, 김재덕
박태원
(1988-1991)
박기호, 이병윤, 최희섭 유동수 이순표, 이상래 진해윤, 이재희, 강우곤, 조원표, 박창식,
김한평, 김재덕, 이종복, 이기훈, 박창서,
강태욱, 최승규, 최순철, 고광준, 나경수,
김은경, 최갑식, 강병철
이상래
(1992-현재)
박기호, 이병윤, 최희섭 박태원 진해윤, 김재덕 강우곤, 조원표, 이기식, 박창식, 김한평,
이종복, 이기훈, 박창서, 강태욱, 최승규,
최순철, 고광준, 박동진, 황의환
   
학술 활동
  대한치과의사협회 산하 19개 분과학회중의 하나로서 치과의사협회가 주관하는 학술활동에 적극 참여함은 물론 앞으로 있을 국가시험위원회와 전문의 시험에 대비하여 본 학회의 안을 마련하는 중이고, 연1회의 정기총회 및 학술대회와 분기별 학술집담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전국의 9개 치과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전공의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각 대학에서 발표되는 논문들을 모아 학회지 "치과방사선"을 연2회 발간하고 있으며, 해외교류로서는 일본치과방사선학회와 매년 공동세미나를 개최하고 있고, 또한 미국, 중국 등과 교류를 가져 학회에 참석, 논문을 발표하거나 이들 국가들로부터 연자를 초청하고 있다. 1985년부터 적극 참여하기 시작한 국제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는 본 학회가 1994년 제10차 총회의 개최국으로서 총회와 학술대회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여 성황리에 대회를 개최하였다.
   
 
1. 국내 학회
  1970년 대한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가 5편의 발표 논문과 30여명의 참석인원으로 개최된 이래 현재 발표논문 30여편 참석인원 230여명으로 성장하였다.
2. 집담회 및 증례토의
  1974년에는 참석인원 20여명으로 연2회 개최되었으며, 현재는 연4회 매회 참석인원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3. 국제 학회
  첫번째 국제학회는 1994년 6월 25일 The 10th International Congress of Dento-Maxillo-Facial Radiology이며 서울 Intercontinental hotel에 45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또 1984년이래 매년 주최를 바꾸어 가면서 한일구강악안면방사선학 공동세미나를 실시하고 있으며 그 내역은 표 6-1-2. 와 같다.
  표 6-1-2. 한일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
 
개최년도 개최국 개최지 참가인원
1 1984 일본 기후 110
2 1985 한국 서울 140
3 1986 일본 도꾜 130
4 1987 한국 서울 145
5 1989 일본 오사카 175
6 1990 한국 서울 150
7 1992 한국 서울 180
8 1993 일본 가고시마 170
4. 4)학술지 발간
  1971년에 6편의 논문으로 창간하였으며 현재 연2회 논문 30여 편으로 발전하였다. 현재까지의 논문편수, 발행인, 편집인 명단은 표 6-1-3. 과 같다.
  표 6-1-3. 치과방사선학
 
연도 발간횟수(년) 논문편수 발행인 편집인 연도 발간횟수(년) 논문편수 발행인 편집인
1971 1 6 안형규 유동수 1983 1 13 박태원 김한평
1972 1 10 안형규 유동수 1984 1 17 유동수 박태원
1973 1 8 안형규 유동수 1985 1 10 유동수 박태원
1974 1 9 안형규 유동수 1986 1 12 유동수 박태원
1975 1 5 유동수 박기호 1987 1 18 유동수 박태원
1976 1 10 유동수 박기호 1988 1 13 박태원 김재덕
1977 1 9 유동수 박기호 1989 1 14 박태원 김재덕
1978 1 8 유동수 박기호 1990 2 27 박태원 김재덕
1979 1 6 유동수 박기호 1991 2 34 박태원 김재덕
1980 1 8 박기호 박태원 1992 2 30 이상래 강우곤
1981 1 9 박기호 박태원 1993 2 33 이상래 강우곤
1982 1 13 박태원 김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