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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경상대학교 의과대학 진단방사선과학교실
 
1948년 여름 경남 도립 초급 진주농과대학으로 시작하여 국립 경상대학으로 되었다가(1972) 종합대학교로 승격한(1979) 경상대학교에 1980년 10월, 80명 정원의 의예과 신설이 인가되었다. 첫 의예과 신입생들이 선발되었고, 1982년 6월에는 400병상 규모의 의과대학 부속병원 건립이 승인되었다.
1986년 4월 전임강사 정성훈이 임용되면서 처음 방사선과학교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987년 1월에 진단방사선과의 업무가 시작되었다. 금성의료기의 일반촬영기, 투시촬영기, 이동촬영기, 3.5/5.0 linear array probe 1개 달린 초음파검사기와 두산산업의 Parka 250 자동현상기 각 1대씩만을 가지고 진료를 시작하였다. 3월에는 전임강사 김종철, 박찬섭이 임용되고 여름부터는 OECF차관자금에 의해 Toshiba사의 원격조정 투시촬영기인 Gyroscope와 Mammography가, Diasonics사의 DRF-400 초음파검사기가 도입, 가동되었다. 치료방사선과에서는 Varian사의 6 Mev 선형가속기와 Simulator 그리고 치료계획기의 설치가 진행되고 있었다. 1989년 초, GE 9800 CT가 가동되었고, 봄에는 Philips사의 Bi-plane Cine-angiography와 R/F Angio unit가 bi-channel selector에 의해 1대의 DSA computer에 연결, 가동되었다. 또한 치과로부터 Panoramic & Cephalometric unit를 이전 받아 관리하게 되었다. 1988년 개설된 대학원에 1989년 1회 의과대학 졸업생이자 첫 전공의인 공재철이 입학하여 대학원교육이 시작되었다. 이 때 처음 교실제도가 생기면서 조교수 정성훈이 주임교수 직무대리로 발령 받았고 지금까지 부교수 정성훈이 주임교수로 있다. 1991년 봄에는 치료방사선과학교실이 분리, 독립하게 되어 방사선과학교실이 진단방사선과학교실로 불리게 되었다.
1991년부터 준비하기 시작한 제2의 도약을 위한 MRI, CT 도입은 1993년 겨울에 결실을 보게 되었다. MRI동 신축공사가 완료되면서 Siemens사의 1.5T MRI와 Spiral CT가 도입되었다. 이 두 장비를 1대의 server와 3대의 workstation으로 구성된 Mini-PACS(Sienet)에 LAN으로 연결하여 장차 새로운 시대에 대비하고, functional MRI도 시도하게 되었다. 1995년 3월에는 Siemens사의 투시촬영기와 Quantum color doppler ultrasound가 도입되어 더욱 충실한 진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진단방사선과학교실에 교수가 5명이 되면서 충분하지는 못해도 세부전공의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다. 김재형은 주로 신경계를 담당하면서 소아도 보고 있으며, 김형진은 두경부 및 흉부를, 정성훈과 안인옥은 소화기 및 비뇨생식기 분야를 그리고 이구는 중재적 시술과 근골격계를 담당하고 있다. 전공의는 학회의 원칙에 충실하게 3회부터는 2명씩, 5회부터는 3명씩 선발하여 1995년에는 모두 11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그 동안 모두 6명의 전문의가 배출되어 진주, 마산, 인천, 양산 등지의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1989년 개설 이후 현재 석사과정에 5명, 박사과정에 1명의 대학원생을 교육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석사과정 수료생 5명 중 4명이 석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실습교육은 3학년 2학기에 편성되어 1주일간 관찰, conference 참석 및 시청각 교재를 이용한 자율학습을 통해 실시되며 학생이 직접 증례를 발표하여 평가에 반영하기도 한다. 1995학년도부터는 3학년 1, 2학기를 통해 강의와 실습이 병행되나 강의시간수는 32 시간이며 실습은 1학기에 끝나게 된다.
그 동안 직원도 꾸준히 충원하여 이제는 25명의 방사선사와 4명의 사무직원을 합하여 모두 45명이 진단방사선과에서 일을 하고 있다.
1991년 이후 진단방사선과 보고서의 대부분은 의무타자수에 의해 타자되는데 1992년부터는 word processor를 사용하여 form지에 타자되고 있다. 두 set의 dictaphone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지방 도시에 있는 국립대학병원에서 일반 타자수의 기능과 달리 고급 기능을 요구하는 dictation typist를 확보하기가 어려워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 필름은 3 digit color coding system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공간의 부족으로 1994년부터 제2의 창고를 운용하여 마지막 촬영 후 5년 이상이 된 필름을 따로 보관한다.
약 4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회의실에는 motorized view box, X-ray overhead projector, monitor 환등기 등의 장비로 매일 서너 개의 집담회와 학생 실습이 이루어진다. 1988년 박찬섭이 "정상 신생아 척수의 초음파 소견"을 처음 대한영상의학회지에 게재한 이후 모두 37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매년 평균 7편 정도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국외학회에서는 1993년 김형진이 미국 ARRS에서 "Significance of visualized collateral vessels on the prediction of SVC syndrome by CT"를 구연한 이래 모두 6편의 구연과 3편의 전시를 ASNR, 세계초음파학회 등에서 발표하였다.
1993년 김재형이 1년간 미국 Duke University, Medical center에서 연수를 받고 돌아왔으며, 이어서 1994년에는 김형진이 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에 해외연수 중이다. 이미 진단방사선과 구내에 포설된 10base 2LAN cable을 활용하여 진단방사선과 부문시스템을 구축하고, 향후 의무기록 뿐 아니라 화상 등의 자료를 관리하는 차세대 병원 시스템 개발에 대비할 예정이다.
표 1. 인력구조의 변천과정
연도 교수 전공의 방사선사 행정직 직원 계
1986 1   4   5
1987 3   6 1 10
1988 3 1 9 1 14
1989 3 2 12 1 18
1990 4 4 12 3 23
1991 4 6 15 4 29
1992 5 7 17 4 33
1993 5 9 19 4 37
1994 5 10 25 4 44
1995 5 11 25 4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