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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진단방사선과학교실
 
1922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대구의학강습소(1933년 전문학교로 재편)가 개교한 이래 방사선과에 대한 당시 역사는 기록이 부족하며 1940년대 일본인 외과 과장 野見山一六(노미야마) 이 방사선과를 맡아 주로 흉부촬영과 바리움조영 중심으로 진료하였고 한국인 외과의사인 조철제(趙哲濟)가 진료하였다. 1940년 일본인 방사선사 淸水正豊과 일본 Shimadzu사의 뢴트겐 전수학교 1년 과정을 마친 한국인 방사선사 최봉영이 근무하였다. 기계는 일제 Shimadzu사의 Katura라는 모델의 500mA 투시용, 일반촬영기와 이동촬영기를 운용하였다.
해방되던 해인 1945년 10월 1일 대구의학전문학교는 정규의과대학으로 승격되었다. 6 25동란중 대구전시 연합의과대학에서 방사선과학 강의가 이루어졌으며 부속병원은 육군병원으로 편입되었다. 기계는 간호원 숙사에 임시로 설치된 이동용기기 1대가 남아 있었으며, 안치열(安致烈), 김순용(金舜鏞) 등이 방사선과 의사로서 근무하였다. 1952년 11월 UN 한국부흥위원단의 원조로 대량의 장비와 함께 스위스의 방사선과 전문의사인 Ludin H(Basel 대학 교수 역임), 방사선기사 Messmer M 및 기계기사 Diener R 등이 파견되었다. 1953년 1월 육군병원에서 의과대학부속병원으로 복귀함에 따라 하루 2시간의 학생 강의 및 실습이 시작되었다. 1954년 9월에 김순용이 방사선과 초대과장에 취임하였다. 1955년 5월 부속병원의 보수가 완료되어 투시진단기, 단층촬영기, 심부치료기 및 표재치료기 등의 기계들이 설치되었으며 여러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1956년 10월 문창수가 조교로서, 1959년 7월에는 박진우(朴鎭雨)가 전임강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김순용은 1957년 9월 미국 Cornell 대학교와 1960년 5월 스웨덴 Karolinska 의과대학에서 유학하였다. 1955년 10월 대한영상의학회에 단층촬영소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외국잡지로서는 Fortschr. Roentgenstr.에 2편의 논문을 1956, 1958년에 각각 발표하였다. 1959년 2월 한국 최초의 자작 rapid film changer를 사용한 angiocardiography(심혈관조영술)를 성공함으로써 좌측 폐동맥 발육부전증 등의 선천성질환을 진단하였다. 1959년 4월 Am. J. Roentgenology에 발표한 Billroth-I형 위절제술의 X선 소견에 관한 논문은 Meschan저 방사선진단학과 Margulis and Burhenne저 소화기방사선진단학에 인용되고 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주로 소화기학 분야에 치중하여 1962년 3월 일본의학방사선학회에 발표한 pneumogastrography와 1962년 10월, 1966년 2월에 Stockholm Cancer Society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Acta Radiologica에 발표한 동물 실험 논문인 "공허위와 충만위의 혈류변화에 관한 연구" 등, 국내지 21편, 외지 6편의 발표된 논문이 대부분 위장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1961년 4월 김두조가 첫 방사선과 레지던트가 되었으며, 1962년 대학원에 학과를 개설하여 1964년 2월 최성구 및 이경용 등이 방사선과학교실에서의 첫 박사학위 취득자가 되었다. 1969년 2월 우원형(禹元亨)이 과장을 맡게 되어 방사선장애방어에 관한 동물실험 등을 발표하여 방사선생물학 분야의 연구를 시작하였다. 1971년 11월 오장석(吳長錫)이 과장으로 근무하게 되었으며, 혈관촬영을 위한 영상증폭기모니터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원자력연구소와 합동으로 위암조기 발견사업이 진행되었고 지역사회 의학으로 확대하여 위석 및 위장결핵에 관한 연구 등 15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75년 3월 나우연(羅雨淵)이 과장을 맡게 되었으며 25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82년 10월 방사선과가 진단방사선과와 치료방사선과로 분리되고 EXIM 차관으로 CT(GE 8800), 혈관촬영기(GE MSI 1250 IV, 1200mA 150kVp), 초음파기기(Picker Echoview 80L-DI) 및 투시촬영기(Fischer, Micro X-100, 100mA 150kVp)가 설치되었다. 1983년 5월 강덕식(姜德植)이 진단방사선과 과장을 맡아 CT유도하의 미세침 생검 등의 중재적 방사선학 분야를 시작하였으며 같은 해 9월 김용주(金容柱)가 부임하여 이 분야 활동이 급격히 발전하게 되었다. 1984년 "족근골의 Ewing씨 종양"으로 대한영상의학회 전시상을 수상하였고 1990년 "기관지 내로 주입한 각종 조영제에 의한 폐의 방사선학적 및 병리조직학적 변화"로 대한영상의학회 전공의 학술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부터 세부전공제를 실시하여 흉부, 심혈관계 및 중재적방사선학, 복부 및 비뇨기, 근골격계 및 유방, 신경계 및 두경부 등의 5개 분야로 분리하였다.
1990년 10월 정부시범사업으로 한국통신이 계획한 한국종합통신망사업의 일환으로 울진군 보건의료원과 공중전화망을 통한 영상전송과 판독을 하여 teleradiology를 시작하였으며 이는 청송 및 울릉도로 확산되었다. 1994년 10월에는 광케이블 초고속통신망과 workstation을 사용한 본격적인 고해상도 teleradiology가 개통되었다. 1993년 3월 부속병원이 의료법인화 체제로 개편되고 1994년 3월 나선식 CT(GE, Hi Speed Advantage)를 시작으로 디지털혈관촬영기(GE, Advantx/ AFM), 디지털심혈관촬영기(GE, Advantx-LC/LP/DXC)가 설치되었고, 동년 11월 자기공명영상기와 자기공명분광기(GE, Signa Advantage)가 도입되었다.
표 1. 역대 주임교수
주 임 교 수 기 간 주 임 교 수 기 간
김 순 용 1954. 9. - 1960. 5. 오 장 석 1971. 11. - 1975. 3.
박 진 우 1960. 5. - 1961. 12. 나 우 연 1975. 3. - 1983. 2.
김 순 용 1962. 4. - 1969. 2. 강 덕 식 1983. 5. - 현 재
우 원 형 1969. 2. - 1971. 11.    
표 2. 전, 현직 교수 일람
교 수 기 간 교 수 기 간
김 순 용 1954. 9. - 1969. 2. 강 덕 식 1983. 5. - 현 재
문 창 수 1956. 10. - 1958. 10. 김 용 주 1983. 9. - 현 재
박 진 우 1959. 7. - 1961. 12. 김 태 헌 1986. 5. - 현 재
우 원 형 1964. 2. - 1971. 11. 서 경 진 1988. 4. - 현 재
오 장 석 1971. 7. - 1975. 3. 김 용 선 1994.1. - 현 재
나 우 연 1975. 3. - 1983. 2. 염 헌 규 1995. 5. - 현 재
박 인 규 1983. 3. - 1985. 10.    
 
직 종
의 사 전 공 의 12

 

교 수 직
기 사 전 임 32
시 간 제 0
간 호 사 간 호 사 0
조 무 사 3
타 자 수 1
사 무 원 1
암실근무자 1
필름정리원 5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