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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진단방사선과학교실
 
연세의료원은 1885년 Avison박사에 의하여 조선말 한국 최초의 서구식 의료원인 제중원의 설립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후 1900년 미국 크리블란드의 실업가인 세브란스가 기증한 미화 15,000불로 서울역전 남대문 위치에 최신시설을 갖춘 종합병원과 의학교 건물을 1904년에 완공하여 세브란스병원이라 개칭하였다.
세브란스병원에 미국 Wapler제 진단용 방사선촬영기를 가동시킨 것은 1913년이었다. 이 시기의 방사선 업무에 대한 기록은 미비하나, 외과과장인 홉커크가 방사선과장을 겸임하였고, 이때 1911년 제2회로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외과의 강문집이 방사선과 촬영 업무를 전담하였으며 얼마 후 외과의 이일선이 일정기간의 수련을 받고 같이 일하였다. 그 후 1925년부터 1928년까지 고의팔이 과원으로 부임하여 방사선과 업무를 전담하였다. 1929년 제1차대전에 미군의관으로 참전한 바 있는 재미교포인 정일사가 부임하여 근무하였으나 해방과 동시에 전라도지사로 부임하게 되었으며, 이때 주임기사로는 이동식이 있었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는 외과의인 이기섭이 방사선과장으로 재임하였고, 그후 1948년 방사선과 전문의인 이부현이 과장으로 부임하였다. 1949년부터 1950년까지 미국인 의사 Manget F이 방사선과의 고문으로 방사선과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이 때 2대의 방사선촬영기(미 Keleket사제 95kVp 200mA와 GE사제 기종)가 도입되었다. 6·25동란으로 모든 방사선기자재는 파괴되고, 과장이던 이부현이 납북되었으며, 전쟁중 1953년까지는 거제도 장승포시에 세브란스 UN 구호병원과 UN 농아자병원을 운영하게 된다. 전쟁 후 1956년까지의 기록은 확실치 않으나 1956년부터 1959년까지는 호주인인 Burges JN가 방사선과장으로 봉직하면서 강의를 전담하였다. 해방 후 이기간 동안의 방사선과의 모든 실무는 방사선사인 황종섭이 담당하였으며 1958년까지 봉직하였다. 1958년 안승봉이 미국에서 방사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귀국하여 방사선과 주임교수 겸 과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주임교수로서 진단, 치료, 핵의학을 담당하였다. 10여 년간 방사선과에 봉직해 온 교수 안승봉이 1970년 사임하고, 그 해 최병숙이 주임교수 겸 과장에 취임하여 방사선과학교실의 발전을 위해 공헌해 오다가 1978년에 작고하였다. 이어 박창윤, 서정호가 주임교수 겸 과장으로 봉직하였고 1990년 3월부터 현재까지 이종태가 교실과 방사선과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병원직제상 치료방사선과는 1984년 분과되면서 당시 주임교수이던 서정호가 과장으로 겸임하였으며, 1987년 방사선종양학교실로 독립하면서 미국에서 치료방사선전문의를 마친 노준규가 초대주임교수로 발령 받았으며, 1991년부터 김귀언이 제2대 주임교수로 치료방사선 업무와 교실을 관장하고 있다.
1928년 방사선촬영장치가 추가도입 설치되었으나 기종명에 대한 기록은 없다. 또한 1938년 일본 Shimadzu사제인 X선장치로서 심부치료와 일반촬영을 겸용하는 공기냉각 방열식장치가 도입되어 진단 및 방사선치료에 이용되었다. 그 후 1946년에 미국의 대한 의료원조의 일환으로 Keleket 회사 제품인 200mA 촬영기를 새로 도입하고 미8군에서 기증 받은 300mA Picker기를 설치하여 가동하였으나 6·25동란이 발발함에 따라 방사선기기를 비롯한 방사선과의 모든 시설들은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는데, 9·28수복 후에 방사선과의 고문을 지냈던 멘겟이 사재를 들여 300mA Picker 방사선기를 구입, 사용함으로써 방사선과의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이듬해인 1959년이 되자 미국으로부터 라디움을 도입하여 처음으로 자궁암환자에 대한 방사선치료를 시작하였다. 그 뒤 1960년에는 미국 GE회사 제품인 250kVp 심부치료기를 도입, 설치하여 암환자에 대한 심부치료를 하는 등 전환기적 업무를 수행하였다1954년에는 일본 도시바(東芝)회사가 제작한 방사선촬영기를 K.C.A.C.로부터 기증 받아 설치, 운영하였다. 1962년에는 미국의 피커사 제품인 500mA 촬영기를 도입, 가동시켜 진단에 사용하는 한편 방사선과에 동위원소실을 설치하였다.
시설면에서 방사선과의 발전사를 더듬어 보면 1962년 세브란스병원이 의과대학과 함께 신촌으로 이전하여 대규모 종합의료원으로 확장, 발전됨에 따라 커다란 변모를 겪었다. 5대의 X선진단기, 1대의 심부치료기 및 갑상선기능검사기구와 3인치 Well형 측정기, 심장기능 검사기기를 도입하고 동위원소실을 개설하는 등 명실공히 대규모의 방사선과로 성장하여 진단·치료·동위원소의 3기능이 공존하는 큰 과로 발전하였다. 1967년에는 2대의 방사선기기를 도입하였는데, TV가 부착된 500mA 고속혈관촬영장치로서 국내에서는 첫선을 보인 것으로 국내의 혈관조영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동위원소도 선상 color scanner가 새로 보강되었다.
1969년 연세의료원이 암센터를 설립하고 일본 OTCA로부터 암치료기 simulator, 사선등선량 곡선 기록장치, 횡단방사사선촬영기, 자동현상기 및 국내에서는 최초로 시도한 초고속 가속심부치료기 13Mev Linac을 기증 받게 됨에 따라 우리 나라에서는 가장 우수하고 최신형의 암치료 장비를 갖추게 되었다. 이 가운데 고선량 강내치료장치를 이용하여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979년에 자궁암치료를 시도하였다. 방사선치료실은 본래 방사선과학교실 소속이었으나 1984년 독립되어 치료방사선과로 발족하였다. 전산화 암치료선량 측정도 1985년부터 시작하였다.
핵의학실도 1969년 이후 이원화되어 연세암센터 소속으로 되었으며 장비도 새로이 크게 보강되었다. 더욱 정밀한 검사와 자료의 정확한 분석을 위해 data processing system으로 floppy disk를 사용하여 의학용 프로그램을 광범위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진단분야에 있어서도 1976년 독일 Siemens사제인 위장촬영기와 양면에서 촬영을 할 수 있는 biplane angiography를 도입하였고, 1978년 미국 Ohio사제인 제2세대 CT를 설치하였으며, 1983년 제3세대 CT(Tomoscan Philips 310)를 도입하였고, 1992년 MRI(GE 1.5 T, Signa) 및 DSA혈관촬영기(Siemens, Multistar)를 비롯한 여러 방사선촬영기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초음파진단기는 1980년 Linear and contact형(TSL-03B, Toshiba)을 도입하면서 급속히 그 수가 증가하여 최근에는 방사선과 뿐 아니라 산부인과 및 내과의 초음파를 통합하여 초음파진단실을 운영하고 있다.
방사선과의 진료면에서 살펴보면, 해외연수후 귀국한 서정호의 주도하에 1978년 신경계(서정호), 1979년 심장/흉부계(최규옥), 소아(오기근), 복부(박창윤) 등의 부분적인 세부전공제를 채택한 후, 교수진이 확보됨에 따라 현재는 신경계, 복부, 심혈관계, 소아, 골관절, 흉부, 유방의 세부전공제를 정착할 수 있었고, 1995년 핵의학분야는 과로 독립되었다.
또한 1983년 3월 연세의료원의 영동지역 분원으로서 초현대식 시설을 갖춘 영동세브란스병원이 개원하게 되었다. 당시의 방사선과는 초대 과장으로 서정호를 비롯한 3명의 교수진과 7명의 방사선사가 근무를 시작하였고, 세브란스 본원에서 전공의를 파견하는 등의 인력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1989년 신관증축과 함께 진료 및 연구활동에 세부전공제를 정착화 시키면서 현재는 7명의 교수진과 10명이 전공의를 포함하여 54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방사선촬영기 20대, C-arm 3대, 이동용 X-선장비 2대, 동위원소장비 1대, 고해상 CT 2대, 초음파기 5대 및 MRI 1대를 갖추고 20만건 이상의 촬영을 시행하고 있다. 방사선과학의 학생교육에 대한 해방전의 기록이 미비하여 당시의 독립된 강좌 여부는 알 수 없으며, 해방 전후부터 방사선과교실의 틀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1958년까지의 변천을 보면, 이부현(1944년-1946년), 김종해(1947년-1949년), 권태수(1954년-1956년), 변효현(1954년-1956년) 등 여러분이 어려운 여건에서 학생강의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1958년 귀국 후 주임교수로 선임된 안승봉을 위시하여 1960년 박창윤, 1961년 이규환이 미국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여 귀국하면서 보다 체계적인 방사선과 강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교육방법이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많은 변천을 보여 주었으며, 현재는 교실에서 편찬한 교과서를 중심으로 의학 본과 3학년에서 54시간의 학생 전체 강의와 2주간의 실습을 하며 4학점이 부여된다. 학생교육은 교수 5명, 부교수 3명, 조교수 6명의 전임교수진으로 구성되어 수련과정자에 대한 강의와 실습을 분야별, 계통별로 담당하여 더욱 내실화를 기하고 있다.
방사선과학교실에서 최초의 대학원 강좌 개설은 1972년에 시작되었으며, 1974년 이영해가 교수 최병숙의 지도하에 "표면상태에 따르는 방사선 오염제거의 실험적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총 32명의 석사학위 취득자가 있으며, 박사학위는 1980년 유형식이 교수 박창윤의 지도하에 "전자선에 의한 방사선 폐염과 섬유소 용해제에 관한 연구"로 취득한 후 5명의 박사학위를 배출하였다. 현재 석사 및 박사 과정에 14명이 재학하고 있다. 전공의 수련은 1957년 유호준이 처음 입국하여 1960년 수료하였으며, 그후 현재까지 97명의 전문의가 배출되었다.
학술적인 면에서 교실의 변천을 살펴볼 때, 1960년 이전의 기록은 찾기 어려우나, 대한방사선학회지가 발행되기 시작한 1964년 1호에 안승봉 원저로 "위장의 양성종양"이 발표된 이래 1960년대에는 1년에 불과 5-6편 정도의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매년 40-50편 정도의 학술논문을 발표하는 등 학문적으로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국제학술지 논문발표는 1970년 박창윤이 "Radiologic studies on emptying human gall bladder"라는 제목으로 Annals of Surgery에 처음 발표한 이후 1990년 초부터 그 수가 증가를 보이고 있다.
교실원의 해외연수는 세부전공제를 채택하면서 활성화를 이루게 되었으며, 1975년 처음으로 당시 부교수이던 서정호가 미국의 Thomas Jefferson의대에서 교수 이규환의 지도하에 2년간 신경방사선분야의 임상연구원으로 수련 받은 것을 필두로 하여, 전 교수직 staff는 1-2년간의 해외연수를 거치게 되었다.
과의 업무를 위하여 교실의 개설 초기인 1950년대부터 타자수를 고용하여 판독업무를 시행하여 왔으며, 1988년부터 판독업무의 전산화를 시작하여 현재 병원전산화계획에 따라 모든 업무영역으로 연계를 계획하고 있으며, 1989년부터 녹음기(dictaphone)를 사용하여 판독을 하였다.
표 1. 과 보직자 명단 및 기간
직함 성명 기간 직함 성명 기간
초대과장 홉커크(미국) 1913-1925 주임교수겸과장 최병숙 1970-1978
과장 고의팔 1925-1928 주임교수겸과장 박창윤 1978-1984
과장 정일사 1929-1945 영동세브란스과장 서정호 1983-1984
과장 이기섭 1946-1948 주임교수겸과장 서정호 1984-1990
과장 이부현 1948-1950 영동세브란스과장 오기근 1984-1995
명예과장 버제스(호주) 1956-1958 주임교수겸과장 이종태 1990-현재
초대주임교수겸과장 안승봉 1958-1970 영동세브란스과장 김기황 1995-현재
표 2-1. 전직 교수 명단
직위(이임시) 성명 임용일 이임일 비고
교수 안승봉 1958 1970 주임교수:현미국거주
부교수 이규환 1961 1963 현미국마이아미대학교수
교수 버제스 1956 1958 현호주거주
조교수 천세영 1962 1965
부교수 최용규 1968 1973 현미국거주
전임강사 곽철균 1969 1970
전임강사 윤용규 1970 1972
전임강사 김정규 1972 1973
부교수 이도행 1971 1981
전임강사 이종수 1958 1958
조교수 최명선 1974 1977 현고려대학교수
부교수 노준규 1987 1992
강사 유호준 1964 1964
교수 최병숙 1961 1978 주임교수:작고
조교수 박양옥 1965 1968 작고
교수 서정호 1970 1993 주임교수:현아주대교수
전임강사 최경희 1974 1976 현미국거주
조교수 이영해 1975 1980
조교수 성기준 1982 1983 현원주의대교수
조교수 김귀언 1982 현치료방사선과교수
전임강사 서창옥 1985 현치료방사선과부교수
전임강사 최형식 1989 1990
표 2-2. 현직 교수 명단
직위(이임시) 성명 임용일 비고
교수 박창윤 1960 주임교수역임
교수 오기근 1973
교수 최규옥 1975
교수 이종태 1983 현주임교수
교수 유형식 1980
교수 김기황 1981
부교수 김상진 1984
부교수 김동익 1985
부교수 서진석 1986
부교수 이종두 1987
부교수 정태섭 1987
조교수 김명준 1988
조교수 윤춘식 1990
조교수 이도연 1993
전임강사 김명진 1994
전임강사 정재준 1995
연구전임조교수 정은기 1994 자기공명분야물리학박사
표 3-1. 현 직원수
직 종 신촌(본원) 영동 인천
의 사 교 수 직 13(연구강사2포함) 7(연구강사2포함) 1
전 공 의 35 10

 

기 사 55 26 7
간 호 사 간 호 사 1 0
조 무 사 3 2
타자수 4 3
사무원 11 5 1
기타 7 1
129 54 9
표 3-2. 현 직원수
직종 인원
의사 전공의 3명+6명(세브란스병원으로부터파견)
교수직 7명
특임교수 3명
연구강사 1명
기사 43명(방사선사40명,임상병리사3명)
조무사 1명
타자수및사무원 12명
임시직 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