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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해방이후 - 1950년대
 
해방 이후부터 6.25동란기의 진료활동은 일제시대 때의 X선 시설과 주한 미군이 사용했던 X선 장치를 주로 이용하였다. 세브란스병원에는 Manget F이 방사선과의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1949년 미국의 Keleket회사 제품인 200mA 촬영기를 새로 도입하였고 미8군에서 기증 받은 30mA Picker기를 설치하여 가동하였다. 6.25동란으로 방사선과의 모든 시설들이 파괴되자 9.28수복 후 사재를 들여 30mA Picker 방사선 기기를 구입하여 사용하였다.
6.25 직후의 우리 나라 방사선 기기의 실태는 대단히 취약했다. 큰 병원에 있는 기계들은 일제시대 사용하던 일부와 주한 미군이 사용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후에 외국 의료지원단에서 사용했던 기계들이 불하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전후 의료지원의 목적으로 생긴 병원들(대구의 Swiss medical team, 부산 서독병원 등)의 진료활동이 활발했으며 방사선과 진료활동에 도움을 주었다.
서울대학병원의 경우 1955년 UNKRA(국제연합한국재건단)의 원조로 일제 투시촬영기와 단층촬영기가 새 장비로는 처음이고 후에 자체자금 또는 차관자금에 의하여 현대화된 장비들을 갖추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X선 필름의 이용이 보편화되었고 1954년부터 설퓰천 X선 군의관 교육 과정을 거쳐 배출된 X선 군의관들의 활약으로 X선을 이용한 진료에 발전이 이루어진다. 또한 1958년에는 스팟 촬영 장치를 갖춘 미국 GE사의 300mA 투시촬영기와 200mA의 이동촬영기, 미국 GE사의 maximar 250 kVp 심부치료기가 도입되어 여러 가지 특수촬영들이 가능하게 되었으나 장비 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병원은 1958년에 서울 을지로 6가에 개원한 국립의료원이었는데 당시 방사선과학의 선진국이었던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의 스칸디나비아 3국의 공동출자로 설립되었으며 각종 첨단의료장비와 자국의 우수한 의료인력의 지원으로 우리 나라 방사선의학 발전에 역시 크게 기여하였다. 그 당시 국립의료원에 설치된 의료장비로는 독일 Siemens사 및 스웨덴의 Elemma-Sch enander사의 기계들로서 위장투시용 2대, 혈관촬영기 1대, 단층촬영기 2대, 두부촬영기 2대, 일반촬영기 3대 등, 기타 이동촬영기가 여러 대 있었다. 기타 부속장비로는 혈관촬영용 연속촬영장치 2대와 자동현상기 2대가 있었다. 국립의료원의 방사선과는 스칸디나비아 방식에 의하여 방사선과 의사가 모든 특수검사를 직접 시술하였기 때문에 1958년부터 강석린(姜錫麟), 권태수(權泰洙)등에 의하여 혈관조영술은 물론, splenoportography, P.T.C. 등 침습적 검사가 직접 시술되었다.
전남대학병원에서 임파관조영술이 최초로 시행되고 라디움 치료시설의 보급이 활발해지며 대부분 의과대학병원에는 X선 심부치료기에 의한 치료가 이루어졌다. 1958년에 원자력법이 공포되고 1959년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하여 최초로 갑상선 치료를 시행함으로써 국내에서의 핵의학이 시작되었다. 조중삼의 증언에 의하면 1935년 경성대학 외과에서 특발성 괴저의 진단 목적으로 대퇴동맥을 통해 혈관조영술을 실시하였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실제적인 심장조영술, 대동맥조영술 그리고 비간장 정맥조영술 등은 1955-1958년 경에 경북대학병원, 부산대학병원 및 국립의료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