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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해방전
 
1885년 미국 선교사 Allen H에 의해 서양의학이 국내에 알려지고 이듬해 광혜원이 개원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본격적인 의료활동이 시작되었다. 1895년 뢴트겐에 의해 발견된 X선이 의학용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후 우리 나라에 도입된 기록을 보면 1912년(大正 1년) 발간된 1911년도 조선총독부의원 연보에 X광선실을 본관 1층을 확장하면서 설치하고 진료에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X선 촬영장치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11년임을 알 수 있고 설치된 기종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1913년 Avison OR에 의해 설립된 세브란스병원에 미국 Wapler사제 X선 촬영장치가 도입 가동되었고 같은 해에 평안남도 평양도립병원에도 설치되었다. 1916년에는 경상북도립 대구병원에도 X선 기계가 있었다고 한다. 이때의 진료는 X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의사나 기사가 없어서 임상진료를 하는 의사들이 X선 기사 일도 겸했다고 한다. 그 후 1925년 대구동산병원(미국 Victor사제 Acme 30mA)에도 X선 장치가 도입되어 초창기 진료활동을 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23년에는 조선총독부의원에 치료용 X선 발생장치 Symmetry가 설치 가동되어 방사선 치료의 장을 열었다. 그 외에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이 무렵에는 주로 단순 X선 촬영에 의한 진료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최초의 X선 전담 기사에 대한 기록도 이 때 찾아볼 수 있다. 특기할만한 기록으로 일본인 鈴木元晴(스즈끼 모또하루)가 저술한 소화기렌트겐진단학의 73면에 1919년 서울에서 유산 바리움 중독사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어서 그 당시에 벌써 위장 X선 검사가 시행되었음을 유추해 알 수 있다.
1938년 당시 평양의학전문학교 뢴트겐과 강사 原保郞(하라 야스로)은 그가 28개의 주요 관공립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뢴트겐 시설에 관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고하였는데 그의 논문(조선의학회잡지 제 28권 1호 112-118)에 의하면, 회답한 24개 병원의 방사선 시설은 31개로 일제 기계가 12대, 미제가 12대, 독일제가 7대였으며 설치지역 및 연도는 평안남도립평양(1913), 경상북도립대구(1917), 전라남도립광주(1921), 전라북도립군산(1922), 전라북도립전주(1923), 경성적십자병원(1923), 경상남도립마산(1924), 경상북도립김천(1924), 강원도립춘천(1924), 함경남도립혜산진(1924), 충청북도립청주(1925), 경기도립개성(1925), 경기도립수원(1925), 황해도립해주(1925), 평안북도립의주(1925), 함경북도립용정(1925), 평안남도립진남포(1926), 전라남도립제주(1925), 평안북도립강계(1925), 함경남도립원산(1925), 경상북도립안동(1925), 충청남도립대전(1930), 황해도립사리원(1931), 강원도립강릉(1937)이었고 부립부산, 전라남도립순천, 경기도립인천, 함경북도립라남의 4개 병원이 회답이 없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 병원의 1개월 필름사용량은 30매 이하가 5개 병원, 30-60매가 7개 병원, 61-100매가 5개 병원, 101-250매가 4개 병원, 200매 내외가 4개 병원, 460매 이상이 1개 병원으로 이는 평양도립병원이었다고 하였다.
1930년대 들어서면서 X선 장치의 보급도 증가하고 이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의 수나 X선 기사의 수가 증가하였는데 총독부의원 후신인 경성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에는 鈴木가 있었고 밑에 1931년 일본인 의사 山中英一 (야마나까 에이이찌)가, 1934년에는 이부현(李富鉉), 1937년에는 조중삼(趙重參)이 입국하여 진료를 담당하였으며, 경성의학전문학교부속병원 방사선과에는 1935년부터 岡田正産(오까다 마사히꼬)가, 경성적십자병원 방사선과에는 寺元高(데라모또 다까)가 있었다. 세브란스병원에는 1930년 X선 기사로서 미국에서 돌아온 정일사(鄭一史)가 주임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신설된 평양의학전문학교에는 1935년 일본 九州대학 의학부 출신인 原保郞이 방사선과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보다 체계적인 진료 활동을 하고자 했던 노력들은 1932년 국내 방사선분야 의사와 기사들이 참여하는 조선뢴트겐협회의 결성 등의 열매로 나타나게 된다. 이때 이루어진 진료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1935년 경성대학 외과에서 특발성 괴저의 진단목적으로 대퇴동맥을 통해 혈관조영술을 실시하였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당시 경성대학 의학부 뢴트겐과에서 사용된 X선 촬영장치는 기계 정류식의 쇼크 방지장치도 안된 불안한 것이었지만 이를 이용해서 투시도 하고 촬영도 하였다고 한다. 또한 1912년 조선총독부의원에 라디움이 도입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1930년대에는 라디움치료가 경성대학 의학부 부속의원, 용산철도병원, 부산시립병원 등의 종합병원과 개인병원인 경성부인병원에서 이루어졌다. 1920년대에 사용되던 gas 관구는 1936년경에는 Coolidge 관구로 대치되었고 이후에는 Sielex 관구가 도입되었다. 뒤에 나온 관구들은 발생되는 열도 감소되고 mA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현대식에 가까운 관구들이었다.
1940년에는 35mm 간접촬영장치가 도입되어 X선 집단검진이 실시되기 시작하였고, 1942년에는 재단법인 조선결핵예방회가 국내 처음으로 도,시, 학교, 보건소 등에서 X선 집단검진사업을 실시하였다. 이때는 X선 장치가 무정류, 기계정류시대에서 전파정류, Sielex 관구로 발전되고 보급도 증가됨에 따라 종합병원은 물론 개인병원에도 X선 장치가 보급되었는데 심부X선치료가 경성대학 의학부 부속의원, 경성의전 부속병원, 용산철도병원, 평양의전 부속병원 등에서 이루어졌으며 성진고주파공장 부속병원, 흥남질소공장병원, 아오지탄광병원 등의 X선 시설은 훌륭했다고 하며 대구동산병원, 전주예수병원, 대구·광주 도립병원, 서울·부산의 시립병원에서도 X선 진료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경성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에 도입된 심부치료기는 독일 Siemens회사제 Tuto stasbilivolt이었고 진단기기로는 Shimadzu회사의 진단 장치, 그리고 독일 Pohl-Kiel 회사제 Omniskop 투시대가 있었는데 이 기계는 환자를 움직이지 않고 360도 회전투시가 가능한 것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 방사선 진료의 대부분은 폐결핵, 골절 등이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