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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기타
   
군대에서의 교육(6.25동란중의 교육)
  6.25동란으로 각 대학병원에서의 교육이 사실상 마비되고 육·해·공군 병원들이 종합병원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모든 의국원들은 군의관으로 입대하였다. 6.25동란중 전시 연합의과대학이 부산과 대구에 설치되었다. 부산에서는 조중삼과 당시 공군 군의관이던 주동운에 의해 방사선과학 강의가 이루어졌으나 실습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대구에서는 제1육군병원(경북대부속병원) 과장으로 있던 안치열 이외에도 김순용, 이규환 등이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하면서 강의를 맡았다. 3군병원을 합쳐 방사선과학 수련과정을 거친 분들이 불과 몇 분에 지나지 않아 1952년부터 군의관들에게 3-6개월간의 단기수련을 실시하였고 그 당시 강의교재로는 미국 St.Louis대학 Sante의 저서 "Principles of Roentgenological Interpretation"과 Gray's Anatomy 교과서가 이용되었다. UN한국부흥위원단의 원조로 X-ray시설이 갖추어지기 전, 촬영 및 투시용 유일한 X선 기계였던 당시의 야전용 Picker unit(25mA)로 위장 투시를 하려면 약 30분간을 빨간 안경을 끼고 눈이 암실에 적응될 때까지 희미한 영상을 바라보면서 진땀을 흘리며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이규환 증언) 사병들에게도 방사선과학 교육이 실시되었는데 6.25후 육군에 입대한 김정진 등 군의학교가 주관하여 이루어졌던 X선 기사 양성교육을 통하여 전쟁중 300여명의 기사들을 양성하였다.
  6.25동란으로 많은 미 군의관들이 한국에 파견되었고 그 때 군의관으로 임용되었던 한국인 의사들이 이들을 통해 진보된 학문에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1953년 7월 휴전이 이루어진 이후 윤종섭(尹鍾燮), 박용휘, 김정호, 박수성, 이경상(李京相), 이교웅 등이 부산 및 대구 등지의 육군병원에서 3-4명씩 조를 지어 3개월의 기간으로 미국에서 파견된 방사선 전문의의 집중적인 트레이닝을 받을 기회를 가졌고 이 때에서야 비로소 합당한 방사선과 교육을 받는 의사들이 여러 명 배출되었다. 이들의 일부는 차 후 M.D.P.라는 미국 국무상 정책의 도움을 받은 육군 본부에 의해 선발되어 미국에 있는 큰 육군 병원에 파견, 소위 post-observer training course에서 6개월씩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1953년 8월 안치열이 Letterman 육군병원(San Francisco), 이경룡이 Texas에 있는 육군병원으로 파견되어 교육을 받고 귀국하여 X선 군의관 양성교육에 종사하게 되었으며, 이후로도 안병선이 Letterman 육군병원으로, 김종업이 하와이에 있는 트립다로, 또 박용휘가 Letterman 육군병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 때 실시된 군의관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된 많은 X-선과 군의관들의 활약은 방사선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외국인에 의한 교육
  방사선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외국인들로는 해방 직후의 주한 미군병원 방사선과에 근무하면서 한국인 의사들과 학문을 교류하던 미국인 의사들과 연세의료원에서 활동중이던 Manget F을 들 수 있다. 특히 1949년부터 1950년까지 연세의료원의 방사선과 고문자격으로 방사선과의 발전에 기여한 미국인 Manget F은 6.25동란으로 방사선과의 모든 시설들이 잿더미로 변하자 9.28수복 후 사재를 들여 30mA Picker 방사선기를 구입하여 가동함으로써 방사선과의 명맥을 이었다.
  6.25동란은 방사선과의 위상과 역량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동란중 군의관으로 방사선 진단에 종사하고 있던 많은 방사선과 한국인 의사들은 주한 미군병원에서 근무하던 미 군의관 방사선 전문의들로부터 현대적인 방사선과학을 본격적으로 연수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52년 11월 UN한국부흥위원단으로부터 전후 구호의 일환으로 40만불 상당의 투시진단기, 단층촬영기, 심부 및 표재 치료기 등의 장비를 원조 받고 이와 함께 스위스의 방사선과 전문의사인 Ludin H(Basel 대학 교수 역임), 방사선 기사 Messmer M 및 기계 기사 Diener R 등이 대구에 파견되어 Swiss Medical Team을 형성, 전시중의 방사선과의 교육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외에도 전후의 의료 원조를 위해 주한 서독병원, 瑞典적십자 병원이 부산에 건립되고 Norway병원선이 들어 왔다.
  1954년에 건립되어 1959년 철수한 부산 서독병원에서는 초대 주임교수였던 Graumann HW과 2대 주임교수였던 Haage H가 간 흡충증, 폐 흡충증 등을 연구하면서 한국의학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고 박창윤, 박용휘, 신승우 등이 그곳에서 수련을 받았다. 1953년에 건립, 1957년 철수할 때까지 스위스적십자병원에서는 Sweden의 여의사와 부산 서독병원의 초대 주임교수를 지냈던 Graumann HW 과 Graumann 부인 등이 한국의학팀에게 현대적인 방사선과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1953년 7월 휴전이 되고 전시연합의과대학이 해체됨에 따라 각 학교의 방사선과는 이전의 제 위치를 찾게 되었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 호주의사인 Burgers JN이 연세대학교 방사선과의 명예과장으로 봉직하면서 방사선 진단 강의 및 진료를 하였다. 또한 6.25동란으로 황폐화된 우리 나라 의료를 돕기 위해 UNKRA(국제연합한국재건단)가 1958년 10월, 초 현대식 의료시설을 갖춘 중앙의료원(현 국립의료원)을 개원하면서 초대 방사선과 과장으로 스웨덴 의사인 Lilja B를 파견하였고, 또 노르웨이 의사 Johannessen을 그곳에 파견하여 강석린, 권태수, 천세영, 김기정들과 스웨덴 Elemma-Sch nander 사제인 혈관촬영용 single-plane film changer(AOT), Elemma-Sch nander사제 skull table, 독일 Siemens사제 Tomography 등 11개의 최신장비를 갖춘 5개의 촬영실과 10-20개의 viewing plate로 구성된 5개의 view box를 갖춘 3개의 관찰실을 운영하였다. 1967년 강석린이 한국인으로 처음으로 제6대 과장을 맡을 때까지의 스웨덴인 Lilja B, 덴마크인 Lauge-Hansen N, 노르웨이인 Knut B, Weyde R, Oslen BP, Liverud K 등의 역대 과장들과 함께 노르웨이 의사 Johannessen, Riddervold HO, Wagge P, Valle HH, 덴마크 의사 Jensen FG들은 북유럽의 최신 방사선과학을 도입하여 single-film changer를 사용한 심혈관 촬영을 시행함으로써 우리 나라 혈관 촬영술 분야의 발전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고 동시에 방사선 과학의 첨단적인 지식과 기술을 전수함으로써 그 무렵 우리 나라 방사선 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해외연수
  1953년 8월 안치열, 이경용이 군령으로 도미하여 San Francisco의 Letterman 육군병원과 Texas에 있는 육군병원에서 방사선과학 교육을 받았으며 1955년에는 서울대학교의 김주완이 당시 서울대학교와 자매결연한 미국 Minnesota 대학에 유학하여 1957년에 미국 방사선과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을 획득하고 귀국하였다. 1958년에는 서울대학교의 주동운이 시카고의 North Western대학으로 1년간 유학하였다. 그 외에도 권충식, 김순용, 박용휘 등은 그 당시의 국내 대학교수로서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그 후 점차 외국유학의 기회가 확대되어 현재는 대학에 재직중인 교수는 1년 내지 2년의 외국유학이 의무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연수교육
  대한방사선의학회는 대한의학협회 산하학회로서는 처음으로 1978년 제1회 전문의 연수교육을 서울 동방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실시하였고 수강료는 10,000원이었으며 연수교육 수료증을 발급하였다. 1994년까지 16회의 대한방사선의학회에서 주관하는 전문의 연수교육이 실시되었으며 전문의 연수교육의 연도별 주제 및 개최 장소는 표 2-2-11.과 같다.
  표 2-2-11. 대한방사선의학회 전문의 연수교육 연도별 주제 및 장소
 
  일 시 주 제 장 소
1 1978.10.15 최신 영상 기법 동방빌딩 국제회의장
2 1979.11.25 방사선 치료 국립 의료원
3 1981 소화기 방사선과학 update 연세 의대
4 1982.8.21 Ultrasonography 속리산 관광호텔
5 1983.9.24 골관절 방사선학 대전 유성 관광호텔
6 1984.6.30 Diseases of the Respiratory Tract 연세대 장기연기념관
7 1985.5.25 Pitfalls in Radiology 속리산 관광호텔
8 1986.5.24 Traumatology 제주도 그랜드호텔
9 1987.6.27 복부 영상진단 설악산 설악파크호텔
10 1988.4.30 폐질환의 방사선학적 진단 대전 유성 관광호텔
11 1989.4.29 초음파 영상진단 광주 신양파크호텔
12 1990.6.9 Emergency Radiology 목포 신안비치호텔
13 1991.5.25 단순방사선진단
개업의를 위한 초음파 workshop
강원도 용평리조트
14 1992.6.13 Interventional Radiology 제주 신라호텔
15 1993.4.3 Abdominal Imaging 경주 조선호텔
16 1994.6.11 방사선과첨단영상장비의 임상적응용 설악산
17 1995.6.10 MRI의 임상적 응용 수안보 와이키키호텔
  한편 대한방사선의학회와는 별도로 대학별로 방사선과 전문의, 전공의 및 일반의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교육이 1978년 4월 24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임상의를 위한 방사선 진단"을 주제로 처음 실시하였으며 이때 50여명의 개업의가 참가하였다. 이후 매년 4-5차례에 걸쳐 분야별 연수강좌를 실시하고 있으며 연세대학병원, 경희대학병원, 고려대학병원, 울산대학 서울중앙병원 방사선과 등에서 연수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다. 대학별로 처음 실시한 연수교육의 일시 및 주제는 표 2-2-12.과 같다.
  표 2-2-12. 대학별로 처음 실시한 연수교육의 일시 및 주제
 
주 최 시작 일시 주 제
서울대학교 1978. 4.24 임상의를 위한 방사선진단
경희대학교 1988 방사선 해부학
울산대학교 1989 MR in Medicine, Update
연세대학교 1991 소화기 영상진단
고려대학교 1994.4 간담도 및 췌장의 악성종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