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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전문의 제도
   
전문의 제도의 도입 배경
  우리 나라에서 방사선과 전문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은 일본인 鈴木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한국인으로는 1934년 이부현, 1937년 조중삼이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뢴트겐과에 입국함으로써 시작이 되었다. 해방 이후 일본인이 철수함에 따라 한국인에 의한 방사선과 교육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주로 조중삼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1946년 2월에 주동운, 1946년 9월에 안치열, 1947년에 김희섭, 김정진 등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방사선과학교실에 조수로 입국함으로써 방사선과 전문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시작되었다.
  우리 나라 전문의 제도는 서류심사로 전문과목 표방허가증을 발급하던 시기와, 전문의 자격고시에 의해 허가증을 발급하던 시기, 그리고 그 허가증의 개념이 자격증의 개념으로 바뀌는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951년 9월 25일 공포된 국민의료법(법률 제 221호) 제4조 "의료업자는 명령으로 결정한 바에 의하여 주무 장관의 허락 없이 그 전문과목을 표방할 수 없다"는 조항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도화되었다. 이어 국민의료법의 후속조치로 같은 해 12월 25일 보건부령 제11호 국민의료법 시행세칙이 공포되고 동 세칙 34조에 전문과목으로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비뇨기과, 정신과, 정형외과, 방사선과 등 10개 과목이 지정되었고 제35조에 전문과목 표방허가를 얻기 위해 필요한 수련년한을 5년으로 하고 해당과목에 대한 고시까지도 시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서류심사에 의한 전문과목 표방 허가시기
  당시의 법규로는 전문과목 표방허가증을 발급하기 위해서 고시제를 규정하고 있었으나 광복과 정부 수립, 6.25 등으로 인한 사회적인 혼란과 뿌리 깊은 일본식 의학교육, 광복 이후의 미국식 의학교육의 실시로 의과대학 졸업 후 교육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아 고시의 기준을 정하기 어려운 난점들이 있어 당분간 전문과목 표방허가증을 서류심사로 발급하기로 하고 보건부 훈령 제14호로 의료업자 전문과목 표방허가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업무를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대한의학협회에서 추천된 순수 민간인들로만 이루어진 심사위원회는 위원장에 정준모, 위원에 심호섭, 신필호, 윤태권, 정기섭, 고병간, 김영택, 남명석, 김희준, 곽재희, 오원석, 송형래, 차희선 등 14명으로 구성되었고 산하에 각 과별로 분과위원회를 두었다. 그 당시 방사선과 분과위원회에 어떤 분들이 위촉되어 활동하였는지는 문서상의 기록을 찾을 수 없지만 분과위원회가 1차 심사를 담당하고 그 결과를 심사위원회에서 심사하여 최종 결정을 하도록 하였다. 심사위원회의 중요 결정사항으로는 5년의 수련기간이 필요한 전문과목 표방허가요건 이외에도 1952년 7월 3일 보건부 예규 제2458호에 의한 특례조치로서 만 2년 이상의 수련을 받고 6년 이상 전공과목을 표방하고 개업한 자와 수련을 전혀 받은 바 없어도 만 15년 이상 단일과목을 표방하고 의업을 계속한 자에 대해서도 만 5년 이상의 수련을 필한 자와 동등한 자격을 주기로 하였다.
  공식적으로 전문의제도가 시작된 첫해인 1952년에는 방사선과 전문의가 배출되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모든 과의 전문의가 과별 구별없이 일렬번호로 주어지다가 과별 전문의 번호로 바뀌었다. 방사선과의 초기 전문의 1번은 조중삼, 2번은 안치열, 3번은 주동운, 4번은 김희섭, 5번은 김정진 등의 순서로 19명이 방사선 전문과목 표방허가증을 받았고 1974년 전문의 자격증으로 바뀌면서 전문의 자격증 제1호는 이경룡(李鏡龍)이었다.
   
전문의 자격고시에 의한 허가시기
  1955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된 수련과정을 이수한 수련의가 배출되는 시기에 처음으로 전문의 자격고시가 실시되었다. 고시업무는 보건사회부의 내부위임을 받은 국립보건연구원에서 관리하였으며, 보사부 공고 제722호(1960.5)에 의하여 제1회 전문의 자격시험이 1960.5.24 - 25 양일간 서울대학병원에서 시행되었다. 시험은 필답과 구술고사 2과목으로 지정하고 100점 만점에 70점을 합격선으로, 과락을 50점으로 하였으며 방사선과는 8명이 지원하여 서류심사에서 통과한 4명 모두 합격하였다. 1967년에는 응시자 13명중 3명만이 합격하는 저조한 합격율을 보이는 파란도 있었으나, 국립보건원이 관장하는 전문의 자격고시는 1972년까지 실시되었으며 이 기간동안에 108명의 전문의가 배출되었다.
   
전문의 자격증 시기
  1973년 전문의 자격시험의 관리가 국립보건원으로부터 대한의학협회로 이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74년 9월 24일의 의료법 부칙 제2조에 의료업자 전문과목 표방허가증을 전문의 자격증으로 갱신 발급하게 됨에 따라 전문의 자격의 공신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 외국에 있던 일부의 전문의들이 누락되기도 하였다. 대한의학협회에서는 상설위원회로 고시위원회를 두고 위원장에 대한의학협회 학술부회장이, 위원은 의협 위촉위원 약간명과 각 전문과목 학회대표를 위촉하고 그 산하에 고시 실행위원회가 실무를 맡고 있으며 실행위원회의 위원장은 의학계의 모든 학회가 회원으로 되어 있는 대한의학회 회장이 당연직으로 위촉되어 자격시험 일정, 시험위원 위촉, 합격자 사정 등의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각 학회에는 수련고시위원회를 두도록 하였고 수련고시위원은 3년을 임기로 매년 위원의 3분지 1을 교체하여 대한의학협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표 2-2-3.) 대한방사선의학회는 수련고시위원회를 두어 전공의 교육과 수련 그리고 고시 업무를 관장하도록 하여 왔고 1983년부터 상임 이사제를 채택함에 따라 함창곡이 초대 고시·수련이사에, 이어서 김건상, 임재훈(林在勳)이 그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대한의학협회의 규정과는 별도로 1993년부터는 수련고시위원회의 업무를 고시위원회와 수련위원회로 나누어 현재는 정규병(鄭圭柄) 고시이사와 오용호(吳勇鎬) 수련이사가 맡아 하고 있다. 전문의고시 문제 출제위원, 문제 정리작업위원, 문제 선택위원, 시험감독위원, 채점위원, 실기시험 선택위원, 구술시험위원 등은 매번 위촉되었고 초기에는 회장 또는 이사장이, 상임이사제의 도입 후에는 고시이사(고시위원장)가 각 시험위원들을 위촉하였다.
  표. 대한방사선의학회 수련고시위원
 
연도 위원장 위 원
1977-1978 한만청 김순용 김정진 박용휘 최병숙
1978-1979 박수성 김순용 김재섭 김정진 한만청
1979-1980 박수성 김순용 김재섭 김진용 한만청
1980-1981 박수성 김재섭 김진용 박창윤 한만청
1981-1982 박수성 김진용 박창윤 우원형 한만청
1982-1983 박창윤 박수성 우원형 윤종섭 한만청
1983-1984 박창윤 박수성 우원형 윤종섭 한만청
1984-1985 박창윤 박수성 윤종섭 한만청 함창곡
1985-1986 박창윤 김기정 서정호 한만청 함창곡
1986-1987 김건상 김주완 김기정 박창윤 서정호 함창곡
1987-1988 김건상 김주완 김기정 박창윤 서정호 함창곡
1988-1989 김건상 강덕식 김주완 유형식 임재훈 최병인 함창곡
1989-1990 김건상 강덕식 유형식 임재훈 최규옥 최병인 함창곡
1990-1991 임재훈 김건상 김용주 김정혁 오용호 유형식 최병인
1991-1992 임재훈 김건상 김기황 김용주 김정혁 오용호 장기현
1992-1993 임재훈 김건상 김기황 김용주 김정혁 오용호 장기현
1993-1994 정규병 김기황 김승협 김종수 유시준 임재훈 하현권
1994-1995 정규병 김기황 김승협 김종수 유시준 임재훈 하현권
   
전문의 고시
  전문의고시는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이루어졌고 필기시험에 방사선 진단 분야별 배점은 초기에 업무량을 기준으로 결정하였으며 거의 변화없이 유지되었다. 그리고 방사선 치료 및 핵의학분야가 20-30% 출제되었으며 치료방사선과가 독립되면서 치료분야의 문제는 삭제되었다. 실기시험은 1974년까지는 구술시험 한가지였으나 1975년부터 우리 말로 슬라이드시험(땡시험) 40%, 판독서 작성 10%, 구술 50%로 바꾸었고 1980년대 들어 판독서 작성문제는 제외되었고 실기시험에 객관성을 높이기 위하여 슬라이드시험 70%, 구술 30%로 배점을 변경하였다. 전공의 수련기간이 1980년부터 3년으로 줄어듦에 따라 1983년도에는 4년 수련 받은 전공의와 3년 수련 받은 전공의가 동시에 전문의 고시를 치렀다. 또한 치료방사선과학 분야가 독립되면서 1983년도에 수련을 마친 전공의들 중 3년간 수련을 받은 전공의들은 진단 혹은 치료방사선과학중 택일하여 시험을 치렀다. 1990년부터는 전공의 수련기간이 다시 4년으로 연장되어 1993년도에는 새로 배출되는 전공의가 없어 전년도 불합격자들만을 대상으로 전문의 고시가 치러졌다. 1994년 현재 35회 전문의 고시가 치러졌으며 연도별 방사선과 전문의고시 지원자수 및 합격률은 표 2-2-4.와 같다.
  표 2-2-4. 연도별 전문의고시 지원자 수 및 합격률
 
연도 지원자수 합격자수 합격률(%) 전문의자격
발급자수
1 1960 8 4 50 13
2 1961


8
3 1962


16
4 1963


4
5 1964 15

6
6 1965 17 12 70.6 12
7 1966 11

4
8 1967 13 3 23.1 5
9 1968


12
10 1969


5
11 1970


5
12 1971


6
13 1972 10 6 60.0 9
   
 
연도 지원자수 1차응시자수 2차응시자수 최종합격률(%) 배출된전문의수
14 1973 9 9 8 88.9 8
15 1974 8 8 7 87.5 7
16 1975 16 16 16 100 16
17 1976 11 11 9 72.7 8
18 1977 17 16 16 94.1 16
19 1978 25 25 22 76.0 19
20 1979 22 19 22 95.4 21
21 1980 23 22 21 86.9 20
22 1981 31 30 30 87.1 27
23 1982 44 40 43 97.7 43
24 1983 119 119 118 99.1 118
25 1984 66 61 63 93.9 62
26 1985 61 60 61 95.1 58
27 1986 55 50 55 90.9 50
28 1987 64 61 56 79.7 51
29 1988 72 69 59 77.8 56
30 1989 86 82 67 74.4 64
31 1990 81 75 59 72.8 59
32 1991 92 91 69 75.0 69
33 1992 106 104 97 85.8 91
34 1993 13 7 11 53.8 7
35 1994 100 97 92 84.0 84
   
  ※ 1960-1972년;학회 회의록 참고
※ 전문의 자격증 발급자수는 보건사회부 자료를 참고한 것임.
※ 1973-1994년;학회 숙제보고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