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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교육
   
의과대학교육
  우리 나라에서 방사선과학 교육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경성의학전문학교 1924년 졸업앨범에 X-선실 실습광경이 실려있고(김동익,1924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의 증언), 일본인 鈴木元晴(스즈끼모또하루)가 1921년경 총독부의원에 부임한 것으로 보아 1920년대 초반부터 학생들을 위한 방사선과학 교육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는 1920년대에 외과교수였던 Hopkirk CC에 의한 강의가 시작되었으며, 평양의학전문학교와 대구의학전문학교에서도 1935년부터 방사선과학 교육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방사선과는 외과, 정형외과 등 다른 과에 속하여 있었다. 경성제국대학의 경우 鈴木가 정형외과 中村兩造(나까무라)교수 밑의 뢴트겐실 주임이었기 때문에 방사선과학의 독립된 강좌를 갖고 있지 못하였다. 1940년 4월에 이르러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 처음으로 방사선과학 강좌가 독립 신설되었으며 이어서 경성의학전문학교와 신설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현 고려의대의 전신)에도 방사선과학 강좌가 신설되어 해방 이전에는 이들 세 학교에 정식 방사선과학 강좌가 개설되어 있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현 연세의대의 전신)는 1940년에 이부현(李富鉉)이 시간강사로 강의를 하였다.
  해방이 되면서 대학교육령에 의해 의학전문학교는 대학으로 승격되어 국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의과대학, 서울여자의과대학, 국립 전남대학교 의과대학교, 국립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신설된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그리고 이북의 평양,함흥의과대학 등 전국 8개의 국·사립 의과대학이 있었으며 이들중 방사선과에 교직 책임자가 있는 곳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뿐으로 조중삼(趙重參), 안치열(安致烈), 주동운(朱東雲)등이 방사선과학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34시간의 강의와 1주간의 실습을 실시하고 1학점을 배정 받았다.
  6.25동란이 일어나자 의과대학들은 부산으로 옮겨져 전시 연합의과대학이 설립되어 이곳에서 학생교육이 계속되었는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조중삼과 당시 공군 군의관이던 주동운에 의해 강의가 이루어졌고 실습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대구에도 전시 연합의과대학이 설립되었으며 군에서 문관으로 근무하던 김순용(金舜鏞)에 의하여 강의가 이루어졌다.
  1950년대에 가톨릭의과대학과 국립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이 신설되어 전국에 8개 의과대학이 되었다. 가톨릭의과대학에는 안치열이 초대 주임교수가 되었고 1960년 김응호(金應浩)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하여 교실원이 되었으며, 1962년에 박용휘(朴龍輝), 1963년에 김종우(金鍾宇)가 입국하였고, 1968년부터 박용휘가 주임교수로 교실을 이끌었다.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에는 1956년 신승우(申勝雨)가 주임교수로 부임하여 방사선과를 개설하였으며 1966년 김병수(金炳洙)가 합세하였다.
  한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방사선과에서는 1955년 김주완(金周完)을 자매결연병원인 Minnesota 대학병원에 파견하였고 2년반 후에 미국방사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후 복귀하였으며 교실 근무중 군에 징집되어 군복무후 주동운과 함께 교육과 진료에 참여하였다. 1963년에는 신명수(申命秀)가 미국에서 귀국하여 6년간 조교수로 재직하였고 한만청(韓萬靑)은 1967년 군복무를 마치고 입국하였다. 유두열(劉斗烈), 임종원(林鍾遠)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조교, 전임강사의 신분으로 단기간 교실원으로 근무하였다. 연세대학병원에는 1954년부터 1956년까지 외래강사인 권태수(權泰洙), 변효현(卞孝鉉), 1956년부터 1959년까지는 호주인 Burges JN이 방사선과의 명예과장으로 봉직하면서 강의를 하였다. 미국에서 방사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귀국한 안승봉(安承鳳)이 1958년 주임교수로 취임하였고 1961년 이규환(李圭煥)이 미국에서 귀국하여 4년간 재직 후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960년 박창윤(朴昌潤)이, 1961년 최병숙(崔炳肅)이, 1962년 천세영(千世榮)이, 1970년에 서정호(徐廷鎬)가 각각 강사로 부임하였고 1970년 안승봉이 미국으로 이주한 후 최병숙이 주임교수로 교실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수도의과대학에는 1957년 장기완(張基完)이 입국하여 1970년까지 주임교수를 역임하였고 김용현(金龍鉉), 이교락(李校洛) 등이 잠시 근무한 후 유호준(柳浩濬)이 1966년에 입국하여 1976년 미국으로 이주할 때까지 교실을 이끌었다. 송문갑(宋文甲)은 1970년에 입국, 잠시 주임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서원혁(徐源赫)은 1971년 입국하여 유호준에 이어 교실을 이끌었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는 1953년 김정진(金禎鎭)이 주임교수로 부임하여 1956년 입국한 천명철(千命哲)과 근무하다 1961년 사임하였고 1957년 권충식(權忠植)과 박용휘가 입국하였으나 곧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후에 권충식이 주임교수가 되어 1976년까지 교실을 이끌었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는 1954년 김순용(金舜鏞)이 주임교수로 취임하였고, 1964년 미국에서 귀국한 우원형(禹元亨)이 함께 근무하다 1969년 김순용이 사임한 후 잠시 주임교수를 지내고 1971년 서울로 옮겼다. 그 후 오장석(吳長錫)과 라우연(羅雨淵) 등이 뒤를 이었다.
  이화여자대학교에는 1956년 김희섭(金熙涉)이 군에서 제대한 후 부임하여 강의를 맡았으며 1957년 방사선과를 창설하여 주임교수가 되었고 1986년 정년퇴임시까지 교실을 이끌었다. 1970년 본교출신 이정식(李丁植)이 강사로 입국하여 교육 및 진료를 도왔다.
  1960년대 후반에 조선대학교, 경희대학교, 한양대학교, 충남대학교, 중앙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이 신설되었고 조선대학교에는 이돈영(李暾永)이 주임교수가 되었다. 경희대학교에는 1971년 안치열이 의과대학장 겸 주임교수로, 안재두(安在斗)가 과장으로 부임하였고, 1974년 김순용이 교수로 합세하였다. 한양대학교에는 1972년 강석린(姜錫麟)이 주임교수로 부임하여 윤용규(尹鏞圭), 이재은(李載垠)과 함께 교실을 이끌었고 1975년 윤용규 사직 후 함창곡(咸蒼谷)이 강사로 입국하였다. 충남대학교에는 1972년 박준식(朴俊植)을 초대주임교수로 임용하였고 1974년 이병철(李秉喆)이 입국하여 1975년 박준식의 사임과 함께 주임교수가 되었다. 1971년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개편된 필동성심병원은 1968년에 개원하였고 1969년 박수성(朴琇誠)이 과장으로 취임하였다. 대학 부속병원이 된 후 1974년부터 1977년까지 최병수(崔炳洙), 진수일(陳秀一), 장일정(張一正)이 강사로서 잠시 머물렀고 1977년 김건상(金鍵相)이 강사로 입국하였다. 전북대학교에는 1976년 최기철(崔基哲)이 초대 주임교수로 부임하였다.
  그 후에도 의과대학은 계속 증설되어 현재는 36개 의과대학이 설립되어 있고 이 중 32개 대학이 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대학별 의과대학 설립시기와 현재의 수업시간 및 학점은 표 2-2-1.과 같다.
  표 2-2-1. 대학별 의과대학 설립년도, 강의시간 및 학점
 
학 교 명 의대설립년도 현재강의시간 학 점 실습시작년도 현 실습시간
서울대학교 1899 29 3   70시간
연세대학교 1904 61 4   72시간
경북대학교 1922 34 2 1953 60시간
고려대학교 1938 51 2.5   2주
전남대학교 1944 57 2   72시간
이화여자대학교 1945 70 1 1953 88시간
부산대학교 1953 45   1960 34시간
가톨릭대학교 1954 46 6.5 1958 2주
경희대학교 1967 36 5 1972 80시간
조선대학교 1968 128 5.5 1973 80시간
충남대학교 1968 54 3 1973 68시간
한양대학교 1968 30 4 1973 88시간
전북대학교 1970 56 4.5   112시간
중앙대학교 1971 74 3.5 1975 40시간
순천향대학교 1978 32 4 1983 40시간
원주의과대학 1978 54 2 1983 80시간
계명대학교 1979 32 4 1984 88시간
영남대학교 1979 36 2 1984 2주
인제대학교 1979 40 3.5 1983 2주
원광대학교 1980 96 4 1983 120시간
경상대학교 1981 32 3 1987 30시간
고신대학교 1981 48 4 1985 44시간
한림대학교 1982 32 1 1983 176시간
동아대학교 1984 32 2 1990 44시간
인하대학교 1984 60 6 1990 48시간
충북대학교 1984 36 1.5 1992 44시간
건국대학교 1985 66 2 1990 44시간
동국대학교 1985 58 5 1991 80시간
단국대학교 1988 48 2 1993 88시간
아주대학교 1988 45 4 1993 88시간
울산대학교 1988 59
1993 108시간
대구카톨릭의대 1989 21 1 1996 88시간
   
대학원교육
  1947년 주동운이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조중삼을 지도교수로 하여 방사선과학을 전공으로 하는 대학원 교육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독립된 강좌는 없었으며, 1950년 5월 김정진의 "수인의 결핵조사 보고"와 그 해 9월 주동운의 "이중조영상(위장)에 관한 연구"가 최초의 석사학위 논문들이었다.
  방사선과학을 전공으로 하는 의학박사는 1960년 9월 주동운이 "한국인 정상 심장상에 관한 연구"(지도교수 : 조중삼)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수여 받은 것이 처음이며 1961년에는 안치열이 "육군장병의 흉부 X-선 집단검진에 나타난 폐결핵 환자의 통계적 고찰"(지도교수:김정진)로 전남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1970년대 초까지 대학원 2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연구생제도가 있었다. 이는 그 당시 연구환경이 열악하고 연구비조달이 어려웠기 때문에 대학원생으로부터 대학원 등록금이외의 연구비를 직접 교실에 납부케 한 것이며 이로서 연구도 가능하였고 교실 재정에도 도움이 되었다. 대학원 교육이 정상화되면서 연구생제도는 점차 없어지고 정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이수하는 대학원과정이 되었다.
  현재는 28개 의과대학에 대학원과정이 개설되어 있으며 대학별 대학원 개설년도 및 현재의 석·박사 대학원과정 학생 수는 표 2-2-2.와 같다.
  표 2-2-2. 대학별 방사선과학 대학원교육의 시작년도, 학위수여자의 수 및 현재의 학생 수
 
학 교 명 대학원
개설년도
배출된
석사학위
수여자수
석사과정
재학행수
배출된
박사학위
수여자수
박사과정
재학행수
서울대학교 1947 86 12 66 10
전남대학교 1952 40 8 9 11
부산대학교 1956 17 6 17 6
카톨릭대학교 1960 54 8 34 5
경북대학교 1962 31 4 17 4
고려대학교 1965 52 7 33 14
연세대학교 1972 32 12 5 2
한양대학교 1972 41 6 9 6
경희대학교 1973 30 8 9 6
조선대학교 1973 16 5 2
중앙대학교 1975 54 7 16 4
이화여자대학교 1976 34 11
충남대학교 1977 28 1 4 8
전북대학교 1981 36 8 2 4
원광대학교 1984 8 5 1 1
인제대학교 1985 2 3 2 1
영남대학교 1985 11 6
계명대학교 1985 13 4 1
순천향대학교 1985 6 4 2
한림대학교 1986 3 8 1
고신대학교 1987 2 1 1
경상대학교 1988 4 5 1
충북대학교 1992 1 4 1
인하대학교 1993 3 1
원주의과대학 1993 1
아주대학교 1994 3
동국대학교 1994 1  
단국대학교 199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