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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초기의 활동
 
한인의사들의 미국 이주는 6.25전쟁 이후 사회적 혼란기에 선진의학에 대한 갈망과 선진사회에 대한 동경으로 비롯되었다. 1953년 휴전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한국의학도의 미국 유학의 길이 열리기 시작하자 도미하여 미국각지에 흩어져 인종차별 및 언어장벽을 극복하며 나름대로 방사선의학도로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미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인 방사선과 전문의가 미국에서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북미방사선의학회 연례회의가 가장 적절한 시기였다. 1956년도 당시만 하여도 한인방사선과 전공의는 10여명에 불과하였으며 1958년도부터 RSNA(Radiological Society of North America) 연례학술대회에서 정기적으로 상봉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이 당시만 하여도 대부분이 방사선과 전공의의 신분이었다. 이 시기에 (ARRS(American Roentgen Ray Society)나 RSNA의 연례학술대회에서 매년 만날 수 있는 분들로서는 변효현(卞孝鉉), 장재한(張在翰), 손영화(孫榮和), 김석기(金碩起), 정기은, 이규환(李圭煥), 임종원(林鍾遠), 한상영(韓相暎) 등이었다. 점차 해가 갈수록 참가인원수가 늘어나면서 1968년 12월 RSNA 모임에서 정식으로 한인 방사선과 전문의 모임을 구성하기로 결정하였고 재미 한인의사들로 구성된 전문의 단체로는 최초인 KRUS(The Korean Radiologist in United States)을 발족하여 초대 회장에 변효현, 총무에 차응만(車應萬)을 선출하였다. 이때에 참석한 인사는 변효현, 장재한, 손영화, 차응만, 신광승, 고충환(高忠煥), 김상현, 이재규(李在珪), 이재주, 김홍기, 김홍섭, 장근창, 윤재균, 한만청(韓萬靑) 등이었다 (변효현 증언).
1969년 제2차 KRUS회의시 회원수는 62명이 등록되었는데 회장 변효현, 부회장 송영화, 총무 신광승이 선출되었고 당시에 거의 100명 이상의 한인방사선 전공의가 미국에서 수련 받고 있음이 추정되었고 미국의사회(AMA)명부에 기록된 미국내 각 대학교의 한인방사선과 의사만도 300여명에 이르고 교수 요원으로, 또는 RSNA 위원회 위원으로, 학회에서의 구연, 전시 등 각종 학술활동이 점차 늘어나고 이에 따른 각종 포상도 증가하였다. 1973년에는 장재한이 처음 American Board of Radiology의 시험위원으로 선출되어 한인방사선과 전문의들의 업적과 우수성을 각처에서 발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