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크기글자크기 zoomin zoomout
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학회조직의 변천
   
조직구조의 변천
 
1. 상임이사회는 본회의 운영 및 발전을 위하여 제반시책과 사업을 연구계획하며 다음 업무를 담당한다.
  창립 당시부터 1954년까지 10년 동안은 방사선과 전문의사와 기사로 회원이 구성되었으나, 의사 전문의제도가 시작된 1955년에 이르러 X선 기사들만의 대한방사선기술학회가 창립됨에 따라 기사회원이 자연적으로 분리되었고, 그후 회칙을 개정하여 대한방사선의학회는 방사선의학을 전공하는 의사들만의 단체가 되었다. 1960년부터 남아있는 학회 회의록에 의하면 당시까지는 학회장 1명, 부회장 1명, 간사 약간 명으로 구성된 임원이 학회 집행부로 활동하였으며 총 회원 수는 1959년에 42명, 1960년에 53명이었다.
2. 1961년부터 1974년(이사장제도 도입)까지
  1961년 10월 14일 대한방사선의학회 재건총회에서 조중삼 회장이 사퇴하고, 새로운 회장에 안치열, 부회장에 주동운(朱東雲)이 선출되었다. 조중삼은 이때 명예회장에 추대되었다. 간사에는 김재섭(金在燮), 김주완(金周完), 김희섭(金熙涉), 박용휘(朴龍輝), 신승우(申勝雨), 이규환(李圭煥), 조병희(趙炳熙) 등 총 7명이 선임되었다. 이 당시의 간사에게는 고유한 업무분담이 주어지지 않았고, 학회의 학술행사를 포함한 모든 업무를 논의하는 임원회의는 회장, 부회장, 간사가 참석하는 간사회의에서 이루어졌다. 1961년 총회에서 헌장(회칙)을 개정하여 회장의 임기가 2년으로 바뀌었다.
  1965년 총회에서 회장 주동운, 부회장 김희섭, 간사 김재섭(총무), 안치열(섭외), 강석린(姜錫麟; 기획), 김응호(金應浩;학술), 김주완(재무), 김순용(金舜鏞;무임소), 권충식(權忠植;무임소), 권태수(權泰洙;무임소), 김용현(金龍炫;무임소), 최병숙(崔炳肅;무임소), 감사 장기완(張基完)이 선임되었다. 이때부터 간사에게 고유한 업무분담이 주어졌다. 이때의 총회원수는 115명으로 전문의 74명, 비전문의 41명이었다. 1965년 10월 4일 간사회의에서 헌장개정을 통하여 "간사제도"를 "이사제도"로 바꾸기로 결정하였으나 동년 10월 30일의 정기총회에서 이 개정안은 부결되었다(회의록). 그러나 근거를 찾을 수는 없으나 1965년 11월 8일 마지막 "간사회의"를 가졌으며, 동년 12월 22일 "이사회"로 명칭이 바뀌었다(회의록). 그러나 1974년 이사장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이사제"가 정식으로 총회의 인준을 받지 않은 채 비공식적으로 "간사"명칭과 함께 혼용되어 왔다. 1966년 2월 방사선방어위원회(위원장 : 안치열)가 구성되었다. 1969년 총회에서 회장, 부회장의 임기는 2년에서 1년으로 바뀌고, 부회장은 차기회장이 된다는 내용으로 헌장을 개정하였다. 또한 임원(간사 혹은 이사)의 임기도 1년으로 하되 과반수의 유임을 요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1970년 10월 정기총회를 거쳐 최병숙 회장, 박용휘 부회장 체제가 출범하였다. 이때 고문으로 강석린, 김순용, 김희섭, 안치열, 주동운, 김정진(金楨鎭;대표고문)이 추대되었고, 상임간사(이사)에는 총무 김주완, 학술 유호준(柳浩濬), 김종우(金鍾宇), 기획 박수성(朴琇誠), 섭외 김진용(金振鏞), 재무 안병선(安柄善)이, 비상임간사(이사)에는 권충식, 김병수(金炳洙), 김용현, 박창윤(朴昌潤), 서원혁(徐源赫), 서철성, 우원형(禹元亨)이, 감사에는 김재섭, 송문갑(宋文甲)이 선임되었다.
3. 1974년(이사장제도 도입)부터 1983년(상임이사제 도입)까지
  1974년 10월 정기총회에서 학회의 업무가 점차 방대해지고 회원수가 증가하여 보다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학회운영을 위해 이사장제도(이사장 임기: 4년)를 채택하였으며, 회장 강석린, 부회장 유호준, 이사장(초대) 한만청(韓萬靑; 1975-1978)이 선임되었다. 이사장제도가 생긴 이후 이사장의 역할과 권한이 커졌으며 실무의 대부분을 이사장이 처리하게 되었다. 회장은 학회를 대표하며 총괄하는 역할만 하게 되었다. 이때의 이사진은 권충식, 김병수, 김순용, 김재섭, 김주완, 김한석(金漢錫), 김희섭, 박수성, 박용휘, 안병선, 안치열, 오장석(吳長錫), 우원형, 최병숙 등으로 구성하였다. 이때 회원구성에서 정회원, 특별회원, 명예회원 이외에 준회원(수련의 = 현재의 전공의)을 추가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준회원에게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주지 않기로 하였다. 1974년 11월 방사선과 전문의 인력수급에 관한 연구를 위해 인력 위원회(위원장:강석린)를 구성하여 주로 전공의의 정원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1975년 10월에는 학술용어제정 심의위원회(위원:김순용, 김재섭, 박용휘, 박수성, 유호준, 한만청)가 구성되어 활동을 하였다. 그해 "대한방사선의학회 헌장"을 "대한방사선의학회 회칙"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제2대 이사장(1978-1982)에는 박수성이, 제3대 이사장(1982-1986)에는 박창윤이 선임되었다. 1982년 총회에서 부회장을 2명으로 늘리고 그 중 1명은 방사선과 개원의중에서 선출하기로 회칙을 개정하였다.
4. 1983년부터 현재까지
  1983년 10월 총회에서 상임이사제를 도입하기로 회칙을 개정하고 상임이사에 김춘열(金春烈;학술 간행 담당, 편집위원장 겸임), 진수일(陳秀一;총무재무 담당), 함창곡(咸蒼谷;수련고시 담당) 등 3인을 선임하였다. 이때의 이사진은 회장, 이사장 포함 총 33인으로 구성되었다. 1983년에 아시아대양주방사선의학회(AOCR;Asia Oceanian Congress of Radiology)를 유치하였고, 전문의 고시준비를 위한 고시실무위원회(위원장;함창곡)를 구성하였다. 1985년 아시아대양주방사선의학회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1987년 아시아대양주방사선의학회를 성공적으로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대회장은 안치열, 사무총장은 한만청이었다.
  제4대 이사장(1986-1990)으로 김주완이 선임되었으며 총 39명의 이사진을 구성하였으며 상임이사진의 명단은 표 2-1-2.와 같다. 1988년 총회에서 이사장 임기를 3년으로 바꾸고, 차기 이사장을 이사장 임기만료 1년 전에 선출하고, 기획이사와 국제협력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으로 회칙을 개정하였다. 1989년에는 국민들에게 진단방사선과를 정확히 잘 알리기 위하여 홍보위원회(위원장;기획이사 진수일)를 설치하기로 하였으며 그후 포스터 및 표어 공모, TV를 통한 홍보활동을 벌였다. 이때 보험의무이사도 두기로 하였으며 보험위원회도 구성하였다.
  제5대 이사장(1990-1993)에 진수일이 선출되었으며 이사장의 임기는 4년에서 3년으로 바뀌었다. 상임이사진은 표 2-1-2.와 같으며 일부 원로급 이사들은 명예이사로 추대하면서 총 이사진의 수는 36인으로 다소 감소되었다. 제1회 아시아태평양심혈관 및 중재적방사선과학회를 위한 조직위원회를 1991년에 구성하고, 1993년 서울에서 이 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하였다. 조직위원장 및 대회장은 한만청, 사무총장은 박재형(朴在亨)이었다. 1992년에는 학술위원회, 편집위원회, 수련고시위원회, 홍보위원회, 보험위원회, 국제협력위원회 등 6개 위원회를 두고, 학술, 수련고시, 보험위원회의 위원장은 각 담당이사가 맡고, 홍보위원장은 기획이사가 겸임하며, 편집위원장과 국제협력위원장은 이사장의 추천으로 이사회에서 선임하기로 개정회칙에 명문화하였다. 그 동안 비공식적으로 운영되어 오던 지회를 학회 산하조직으로 공식화하기로 하였고 지회는 본부에 회비를 납부하고, 활동상황에 관한 연례보고서를 제출토록 하였다. 또한 세부전공에 따른 연구회를 산하단체로 두기로 명문화하였으며 학술행사에 소요되는 일정액의 기본경비를 학회에서 지원하였다. 1993년 4월 23일에는 학회창립 5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가 발족하였으며 위원장으로 한만청이 선임되었다.
  제6대 이사장(1993-1996)에 서정호(徐廷鎬)가 피선되었으며 총 52명의 이사진을 구성하여 출범하였으며 상임이사진의 명단은 표 2-1-2.와 같다. 1993년에는 업무의 과중으로 인해 수련·고시이사(담당 위원회 포함)를 수련이사(수련위원장)와 고시이사(고시위원장)로 분리하기로 하였다. 1993년 학회 입회비제도를 신설하여 전문의시험 응시때 납부하도록 하였다.
  [표 2-1-2] 역대 이사장 및 상임이사, 위원장 명단
 
  기간 이사장 총무 학술 고시 수련 의무 기획 편집 국제 협력위
1대 1974~1978 한만청                  
2대 1978~1982 박수성                  
3대 1983~1986 박창윤 진수일 김춘열 함창곡 함창곡          
4대 1986~1990 김주완 한창열 서정호 김건상 김건상 함창곡 진수일      
5대 1990~1993 진수일 김건상 연경모 임재훈 임재훈 최득린 이종태 서정호 한만청  
6대 1993~1996 서정호 연경모 이종태 정규병 오용호 최득린 이재문 함창곡 김건상  
   
회원구성
  대한방사선의학회는 창립 당시부터 1955년까지 10년간 방사선과 전공의사와 기사로 회원을 구성하고 있었으나, 1955년 대한방사선기술학회가 분리 창립됨에 따라 대한방사선의학회의 회원은 방사선의학을 전공하는 의사들만으로 구성되었다. 학회 창립부터 1961년까지는 참고자료가 현재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회원구성을 파악할 수 없다. 1961년 10월 10일 재건위원회 회합과 동년 10월 14일 대한방사선의학회 재건총회에서 당시의 학회헌장(지금의 회칙)에 정회원이외에 준회원이 있으나 준회원의 자격기준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이 기준을 정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준회원제도는 없애기로 하고 특별회원은 "임원회에서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자"로 한다고 결정하였다. 1971년에는 학회 기금의 확대를 위하여 평생회원제도를 도입하였고 업계의 참여를 위한 특별회원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1973년까지 정회원과 특별회원으로 학회회원이 구성되었고 전공의는 정회원에 포함되었다. 1974년 이사장제도를 도입하면서 전공의를 준회원으로 하는 준회원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때 회원은 정회원, 준회원(수련의 = 현재의 전공의), 특별회원, 명예회원으로 구성되었는데 준회원에게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주지 않기로 하였으나 기득권을 인정하여 회칙개정 당시의 수련의에게는 준회원자격으로 선거권을 부여하기로 하였다. 즉 1978년부터는 정회원에게만 선거권을 주기로 하였다. 현재의 회칙은 정회원, 준회원, 특별회원, 명예회원으로 구성한다고 명문화되어 있고 회원규모는 창립당시 수 명의 방사선과 의사와 30여명의 기사들 만이었으나, 정회원수의 증가상황은 표 2-1-3.과 같으며 1980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된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1995년 현재 전공의 1년차 인원이 189명이며 4년차까지 총원은 666명이다.
  [표 2-1-3]연도별 회원 증가현황
 
연도 1960 1972 1975 1980 1985 1990 1995
정회원수 53 109 140 224 530 810 1175
   
위원회 구성
 
1. 임시위원회 1966년 2월 방사선방어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장에 안치열, 위원에 김응호, 김재섭이 위촉되어 방사선 작업종사자의 안전을 위한 방사선 방어 관계법 제정을 노동청에 건의하였으며 필름뱃지 착용을 법제화하기 위한 일을 추진하였다. 1974년 11월 방사선과 전문의 인력수급에 관한 연구를 위해 인력위원회(위원장;강석린)를 구성하였다. 이 위원회에서는 당시 전문의의 과다배출이 문제였으므로 전공의 선발 인원의 증가를 제한하기 위하여 병원별 전공의의 정원을 정하였다. 병원에 따라 전공의 정원을 0.5, 1, 1.5, 2등으로 정하였고 0.5는 전공의를 격년으로 채용할 수 있음을 의미하였다.
  1975년 10월에는 학술용어제정 심의위원회(위원;김순용, 김재섭, 박수성, 박용휘, 유호준, 한만청)가 구성되어 활동을 하였다. 1984년 5월 전문의고시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고시실무연구위원회(위원장;함창곡)를 구성하였으며 이 위원회가 후에 수련고시위원회로 재편되었다.
  1985년 제5회 아시아대양주방사선의학회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였고 1991년에는 제1회 아시아태평양심혈관 및 중재적방사선과학회를 위한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93년에는 학회창립 5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위원장;한만청)가 발족하였는데 산하에 50년사편찬위원회(위원장;함창곡), 회관건립위원회(위원장;진수일), 학술위원회(위원장;연경모;延敬模), 공보위원회(위원장;한창열;韓昌烈)를 두어 행사를 준비중이다.
2. 상설위원회 1981년 편집위원회(위원장;김춘열)가 처음 구성되었다. 그 이전에는 명예적인 편집위원 이름만 학회지에 기록되었으며 학술간사 또는 이사장이 학회지 간행 업무를 담당하였다. 수련고시위원회는 1986년에 처음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는 전문의 고시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그 이전에는 공식 위원회의 구성없이 매 번 수험생의 자격 심사, 문제 출제, 선택, 감독, 채점, 실기 및 구술시험 등을 담당할 위원들을 선임하여 고시 업무를 진행하였다. 1986년에는 보험위원회(위원장;의무·보험이사 함창곡)를 구성하였고 1989년에는 국민들에게 진단방사선과를 정확히 잘 알리기 위하여 홍보위원회(위원장:기획이사 진수일)를 설치하여 포스터 및 표어제작(공모), TV 홍보 등의 활동을 벌였다.
  1990년에는 학술위원회를 처음 구성하였는데 그 이전에는 학술,간행이사를 중심으로 편집위원회에서 학술활동에 관한 업무를 논의하였다. 1990년에는 국제협력위원회(위원장;한만청)를 구성하여 각종 국제학회에 관한 정보 수집, 외국학회들과의 연락업무 및 외국학자의 초청에 관한 일을 하였다.
  1992년에는 학술위원회, 편집위원회, 수련고시위원회, 홍보위원회, 보험위원회, 국제협력위원회 등 6개 위원회를 두고, 학술, 수련고시, 보험위원회의 위원장은 각 담당 상임이사가 맡고, 홍보위원장은 기획이사가 겸임하며, 편집위원장과 국제협력위원장은 이사장의 추천으로 이사회에서 선임하기로 개정회칙에 명문화하였다. 1993년에는 수련·고시이사를 각각 수련이사, 고시이사로 분리하여 7개 위원회를 두도록 회칙에 명문화하였으며, 이외에 평점관리위원회 구성을 위한 실행소위원회(위원장; 김건상;金鍵相)를 구성하였다.
   
회의 구성
  학회창립당시부터 1959년까지는 공식적으로 어떤 회의가 구성되어 있었는지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으나 1960년부터의 기록을 보면 연1회 총회와 부정기적이나 연6회 이상의 간사회의가 있었다. 1960년 이후 간사회의는 점차 정례화 되어 1964년경에는 월1회 개최되었다. 1965년부터 간사회의는 이사회의로 명칭을 바꾸었으나 총회의 인준을 받은 기록이 없다. 1974년 이사장제도를 도입한 때부터 정기 이사회가 생겼으며 과거의 간사회의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1978년 12월부터 1990년 10월까지 대한방사선의학회 이사회와 검진협회 이사회의 합동회의가 매월 1회 정기적으로 열렸다. 상임이사회는 1986년 정기총회에서 처음 학회 공식회의로 인정되었으며 1990년까지는 비정기적으로 열렸다. 1990년 11월 16일 상임이사회의에서 이사회와 상임이사회를 정례화하기로 하였다. 즉 이사회는 1월, 4월(춘계학회), 6월, 10월(추계학회)에 개최하기로 하고, 상임이사회는 이사회를 개최하는 달 이외에 매월 1회 개최하기로 정하였다. 1993년 개정된 회칙에 의하면 회의는 다음과 같이 구성하도록 명문화되어 있다. 즉 총회, 임시총회, 이사회, 상임이사회(구성; 이사장, 총무재무이사, 기획이사, 학술간행이사, 고시이사, 교육이사, 의무보험이사, 국제협력위원장, 편집위원장)로 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