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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방사선의학회의 창립
   
대한방사선의학회 창립 이전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방사선의학의 씨가 뿌려진 것은 1895년 X선이 발견된지 16년이 지난 1911년으로 조선 총독부의원에 X선 촬영기가 설치되어 진료에 이용되기 시작하였다.(1912년 발간 조선총독부의원 연보) 1912년에는 라디움이 도입되었으며,(1912년 발간 조선총독부의원 연보) 1913년 세브란스의학교 부속병원과 평양도립병원에, 1916년 대구도립병원에 X선 장치가 도입되었다. 1920년대에 전국의 도립병원을 중심으로 대략 20여대가 도입 가동되었다. (조선의학회잡지 제 28권 1호) 따라서 1920년대는 우리 나라 방사선의학의 파종기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1930년대에는 X선 장비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X선 기사와 이 방면에 종사하는 의사의 수도 차츰 증가하였다. 라디움 치료도 경성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을 비롯해서 용산 철도병원, 부산 시립병원 등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1940년 35mm X선 간접촬영기가 처음 도입되었고, 1942년에 처음으로 X선 집단검진이 시행되었다. 이 X선 집단검진은 사단법인 조선결핵예방회 (대한결핵협회의 전신) 가 주관하였고 각 시, 도, 학교, 보건소 등에서 실시되었다.
  인맥을 살펴보면, 1921-22년경에 일본인 鈴木元晴(스즈끼 모또하루)가 의관으로 조선총독부의원에 방사선과 전문의사로서는 처음 부임하였다. 1930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연세의대 전신) 부속병원 방사선과에는 X선 기사의 직분으로 미국에서 돌아온 정일사(鄭一史)가 근무하였다. 총독부의원의 후신인 경성대학 의학부(서울의대 전신)부속의원에는 鈴木 밑에 우리 나라 의사로는 1934년에 이부현(李富鉉)이 처음 경성대학 의학부 뢴트겐과에 들어왔고 1937년에는 조중삼(趙重參)이 경성대학 의학부 뢴트겐과에 입국하였다. 1937년 당시 경성대학 의학부 부속의원 방사선과에는 정형외과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정형외과 과장은 中寸兩造(나까무라)였고 鈴木는 그 밑에 있는 뢴트겐실 주임이었다.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의대 전신)부속의원 방사선과에는 1935년부터 일본인 岡田正彦(오까다 마사히꼬), 경성적십자병원(현재 서울적십자병원) 방사선과에는 일본인 寺元高(데라모또 다까)가 근무하였다. 1938년에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고려의대 전신)가 설립되면서 방사선과를 두게 되었고 초대 주임교수에 조중삼이 임명되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X선실은 외과의사 강문집(康文集)이 담당하였고 후에 이일선이 맡았다. 평양의학전문학교에는 1935년 일본인 原保郞(하라 야스로)가 방사선과학교실을 창설하여, 1944년에 안치열(安致烈), 1945년에 이경룡(李鏡龍)이 입국하였다. 대구의학전문학교(경북의대 전신)는 일본인 외과의사 野見山一六(노미야마)와 한국인 외과의사 조철제가 방사선과에서 근무하였다. 대구동산병원(현 계명의대부속병원)에는 1920년대에 한국인 기사 김성길이, 1930년대에는 기사 서상훈(서철성 부친)이 근무하였고, 후에 서철성(徐哲星)이 방사선과 전문의로서 초대과장이 되었다.
  1932년에는 국내에서 X선과에 종사하는 일본인 및 한국인 의사와 기사들로 구성된 조선뢴트겐협회라는 조직이 창립되었고, 해방 전까지 13년간 운영되었으며, 그 당시의 방사선 기술의 발전, 방사선 피폭예방, 협회지 발간 등 방사선의학의 발전과 회원들의 친목에 이바지하였다. 이 협회가 지금의 대한방사선의학회의 모체가 되었다.
  1945년 광복 전까지 활동한 x선 담당 의사 수는 일본인을 포함하여 10여명 정도였고, 한국인 X선 업무종사자(기사)수는 60여명이었다. 당시 X선 담당의사수의 부족으로 X선 업무종사자들이 진단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이들 중에는 후에 X선 전문의가 된 분도 있다. 이상과 같이 해방 전까지는 소수의 우리 나라 방사선과 의사 및 기사가 이 분야에 종사하였으며 주로 일본인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 당시의 방사선의학교육을 살펴보면, 1940년 4월 경성대학 의학부에 처음으로 방사선의학 강좌가 독립, 신설되었다. 그 후 해방 전까지 경성의학전문학교 및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도 방사선의학 강좌가 독립, 신설되었다. 즉, 해방 전까지는 위에 기술한 3개 학교에서 방사선의학의 정식 강좌가 있었다. 그 이전에는 기록이 불확실하나 아마도 1920년대 후반부터 학생들을 위한 방사선과 강의가 부분적으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방사선의학회 창립 (1945)
  1945년 8·15 광복과 함께 조선뢴트겐협회는 자연 해체되었고 한국인들만의 대한방사선의학회 창립총회를 연 것은 같은 해 10월이었고 장소는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 (지금의 국군 서울지구병원) 강당이었다. 40여명의 조선뢴트겐협회 회원들이 참석하였는데 의사회원은 불과 수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의사 이부현이 초대회장으로 선임되고, 의사 조중삼과 기사 박양규(朴良奎)가 부회장이 되었다.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회장에 조중삼이, 부회장에 안치열과 박양규가 선임되었다. 조중삼은 1961년까지 5번 회장을 연임하며 학회의 기반을 다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학회창립 당시부터 1959년까지의 학회조직이나 임원구성, 전체 회원 수 등에 대한 회칙이나 자세한 자료는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역대회장 및 임기(표 2-1-1.) 등으로 미루어 보아 창립당시의 회장 임기는 3년이었으며 이는 1961년까지(초대부터 6대까지) 지속되었다.
  (표 2-1-1.)
 
기 간 성 명 당시소속
초대 1945-1947 이부현 경성의대
2-6 1947-1961 조중삼 서울의대
7-8 1961-1965 안치열 가톨릭의대
9-10 1965-1969 주동운 서울의대
11 1969-1970 김희섭 이화의대
12 1970-1971 최병숙 연세의대
13 1971-1972 박용휘 가톨릭의대
14 1972-1973 박수성 중앙의대
15 1973-1974 김주완 서울의대
16 1974-1975 강석린 한양의대
17 1975-1976 유호준 고려의대
18 1976-1977 김순용 경희의대
19 1977-1978 김정진 한양의대
20 1978-1979 김재섭 적십자병원
21 1979-1980 김진용 원자력병원
22 1980-1981 박창윤 연세의대
23 1981-1982 한만청 서울의대
24 1982-1983 우원형 고려병원
25 1983-1984 윤종섭 한림의대
26 1984-1985 김종우 가톨릭의대
27 1985-1986 김기정 순천향의대
28 1986-1987 김한석 국립의료원
29 1987-1988 서원혁 고려의대
30 1988-1989 김병수 부산의대
31 1989-1990 신경섭 가톨릭의대
32 1990-1991 서정호 연세의대
33 1991-1992 최기철 전북의대
34 1992-1993 김춘열 가톨릭의대
35 1993-1994 한창열 인제의대
36 1994-1995 정덕환 동아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