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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국제화
   
국제학회 개최
  대한방사선의학회의 명실상부한 국제화는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방사선의학회를 유치함으로써 절정을 이뤘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3개 학회(아시아초음파의학회 포함)를 유치하여 훌륭히 치 러 냄으로써 대한방사선의학회는 물론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1987년 9월 21일부터 25일까지 서울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제5차 아시아대양주방사선의학회 (Asian Oceanian Congress of Radiology)는 회장 안치열(安治烈),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한만청을 중심으로 약 3년 동안 준비한 결과 이 학술대회사상 가장 훌륭한 대회가 되었다. 총 2,100명(내국 인 715명, 외국인 738명, 전시업자 647명)이 참석하여 자유연제 241편, 초청강연 138편을 발표하였 고 총 80여개 방사선 관련업체가 참가하여 새로운 장비를 소개하였다. 1993년 5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태평양심혈관 및 중재적 방사선과학회는 조직위원장 한만청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다. 총 833명(국내 522명, 국외 311명, 국 내외 참가의사 598명)이 참가하여 초청강연 108연제, 자유연제 104편을 발표하고 전시도 90편이 발 표되었다. 유관학회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로는 대한핵의학회에서 1984년 8월 호텔신라에서 아시아대양 주핵의학회를 개최하였고 대한초음파의학회에서 1992년 8월 30일부터 9월 3일까지 서울 힐튼호텔에 서 개최된 제3회 아시아초음파의학회에는 의사 1,289명, 전시자 229명이 참가하여 1, 2차 학술대회 보다 훌륭한 학술대회로 승격시켰고 국제적으로 손색이 없는 대회였다는 평을 받았다. 이렇듯 국제학회를 성공리에 개최하게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조직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대 한방사선의학회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가와 노력의 결실이었다. 특히 많은 회원들이 대규모 국제 학술대회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개최전 2-3년 동안 면밀하게 준비한 공이 컸다. 학회 회원의 논 문의 질도 국제대회에서 손색이 없었으며 훌륭한 외국 의학자들과의 학문 교류로 국내 방사선과학 전문의와 전공의의 학문 수준이 높아졌다. 국제 학술대회의 국내 개최를 통해 한국의 방사선과학 은 점차 국제화되었고 학회 회원들도 국제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외국학회지에 논문 게재
  이 글은 미국에서 발행되는 세계적인 방사선과학 잡지, American Journal of Roentgenology 1994년 3월호에 게재된 "American Journal of Roentgenology 의 국제화" 라는 논문의 초록이다. 거 기에 따르면 AJR 에 게재된 한국 논문이 하나도 없던 1980년대 초반(1980-1982)에 비하여 1990년대 초반(1990-1992)에는 24편의 한국 논문이 게재되어 게재 논문 편수를 기준으로 하여 미국, 캐나다, 일본, 한국, 독일의 순으로, 증가율에서는 1위로 한국, 일본, 독일 등이 AJR 국제화의 주역으로 부 상하였다. 1980년 중반부터 1994년 초반에 이르는 동안 대한방사선의학회의 발전과 도약상도 함께 나타내는 논문이다. 한국 방사선과 의사의 논문이 외국 학회지에 처음으로 게재된 것은 1956년 경북대학병원 방사선 과의 김순용 등이 Fortschr. Roentgenstr. Vol. 84 에 게재한 "Ein Fall von Bezoar mit nachtraglicher Einkllmmung in Dunndarm" 과 1961년 전남대학병원 방사선과의 박용휘(朴龍輝)가 Radiology Vol. 78에 게재한 "Pulmonary paragonimiasis as a cause of L ffler's syndrome" 등이 다. 그 후 단편적으로 몇 개의 논문이 게재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많은 논문이 게재되기 시작한 것은 1984, 85년 경의 일이다. 서울대학병원의 박재형 등이 AJR 에 "Arterial manifestation of Behcet disease"를 게재하였고 경희대학병원의 임재훈 등이 Radiology 에 "Papillary carcinoma of the pancreas"를 게재하였다. 이것은 외국자료나 외국인의 도움없이 우리 나라 방사선과 의사들의 힘 으로 게재한 본격적인 국제화의 시작이다. 그 후 1986년에 약 10 편, 1987년에 15편 등 매년 증가 하여 1994년에는 약 60-70 편의 논문이 외국의 유명한 방사선과학 잡지에 게재되었다. 이것은 한국의 방사선과 의사들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하고자 하는 의욕 의 결실이고 한국 방사선과학의 발전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이렇게 몇몇 회원 의 논문이 게재되기 시작하자 전 학회 회원이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히 대한방사선의학회에서 국제 저술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우수 논문에 대하여 포상하여 전 학회 회원의 의욕을 고취시켰던 것도 큰 역할을 하였다. 논문의 질적인 면에서도 초기에 비하여 발전하였다. 1980년대 초기에는 증례보고 중심의 논문, 혹은 기생충증 등에 관한 지역 국한성 병에 관한 방사선학적 연구이던 것이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원저 논문뿐 아니라 임재훈, 최병인(崔炳寅) 등이 기고한 종설이 게재되는 등 외국 잡지 의 편집인들로부터 한국 학자들의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