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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학술대회 및 집담회
   
학술대회
  1980년대 초부터 대한방사선의학회 학술대회에 숙제보고를 포함시키려는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 었지만 적합한 주제가 선정되지 못하여 잠시 지체되었다.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의 사용이 늘어나면 서 진단방사선과 영역에서의 컴퓨터의 이용 가능성이 논의되기 시작하자 1985년 한만청은 전 교실 원과의 공동연구로 "진단방사선과에 있어서의 computer의 이용"이라는 숙제보고를 발표하였다. 이 는 당시에 사용되던 Apple 컴퓨터를 이용하여 진단방사선과의 인력관리, 특수검사례의 자료관리 및 연구자료의 검색 등을 시도한 것이며 당시에 사용되었던 이 Apple 컴퓨터는 64KB CPU 모델로서 하 드디스크 없이 5.25"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 2대였으니 당시의 컴퓨터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이어 부산의대 설창효(薛彰孝)의 "각종 특수 방사선검사의 보고서 작성에 있어서 도해 및 정형화 양식의 이용방법", 연세의대 유형식(兪亨植)의 "진단방사선과에서의 효율적인 필름관리방안" 등 숙 제보고를 몇 년 지속하였으나 이후 적당한 주제가 없어 수년간 중단되었다 연경모(延敬模)를 대표 로 다기관참여의 "Standard bone age of the infants and children in Korea"에 관한 연구가 완성 되어 곧 발표될 예정이다. 학회회원들의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학회에서의 연제발표가 증가함에 따라 학술대회도 1992년부 터는 학회를 3일간 개최하였고 제출된 연제를 제한된 시간에 모두 발표할 수 없었으므로 연제를 심 사하기 시작하였다. 이전까지는 제출된 연제를 모두 발표하거나 학교별로 약간 조정을 하던 것이 심사가 시작되면서부터는 각 분야별로 지정된 심사위원(학술위원)의 심의를 거쳐 통과된 연제만 발 표하게 되었다. 심사는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저자와 소속을 심사자가 알지 못하게 하였다. 1978년부터는 학회기간에 전공의가 발표한 연제 중 논문이 우수하고 발표를 잘한 연제를 심사하 여 전공의 발표상을 수상하기 시작하여 10년간 계속하였으나 학회가 2, 3일 지속되고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발표되기 때문에 심사에 어려움이 있어서 1988년부터 전공의 발표상은 폐지되었다. 종래부터 대한방사선의학회 학술대회를 포함하여 의학 학술대회 전반에 걸쳐 학술대회의 예정시 간을 지켜 끝나는 적이 없었고 대개 1시간 이상 지연되었다. 그것은 발표연자가 시간을 지키지 못 하고 좌장이 시간에 맞게 회의 속도를 조정시키지 못하거나 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1980년 대 말경부터 점점 개선되더니 1992, 3, 4 년에는 예정시간과 거의 맞추어 끝나게 되고 근래에는 예 정시간에 정확히 끝나게 되었다. 이것은 첫째로 국제회의에 참석했던 경험이 많은 회원들이 많아지고 그 중 몇몇 회원들의 학회 지 등에 연제발표에 관한 투고, 학회 집행부의 노력과 홍보 등에 기인하고, 둘째로 거기에 맞추어 좌장들이나 연자들 측에서도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연습과 발표에 임한 덕택이기도 하다. 학술발표 대회의 또 한가지 발전한 점은 발표에 나오는 슬라이드의 질이 괄목할만큼 향상되었다 는 것이다. 슬라이드 작성에 노력을 많이 기울여 화질이 좋아졌고 청중이 알아보기 쉬운 슬라이드 를 많이 제작하여 효과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깨알같이 많은 글씨를 한 개의 슬라이드에 수록하여 글씨가 작아 청중은커녕 연자 자신도 읽을 수 없는 슬라이드를 만든다든지 슬라이드 원고를 너무 성의없이 작성하여 보기 싫다든지 오래되고 낡고 흠집 투성이의 슬라이드를 비춘다든지 하는 연자 가 거의 없어졌다. 대한방사선의학회 및 유관학회, 또는 대한방사선의학회 회원이 주로 참석하고 연자가 대한방사 선의학회 회원인 학술모임의 슬라이드 발표는 항상 두 슬라이드를 동시에 비추며 강의를 수행한다.
   
집담회의 변천
  1980년대 초에는 전공의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집담회가 이미 가족적인 분위기는 사라졌고 또한 CT와 초음파진단기가 등장하면서 집담회 장소가 제한을 받게 되었으며 특히 view box에 걸어놓고 증례를 토의하기에는 인원이 너무 많아 서울대학병원 등의 audiovisual system이 갖추어진 병원에 서만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CT와 초음파검사가 등장하면서 이들 기구가 없는 병원의 전공의들이 이들 새로운 진단법의 영상을 공부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집담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자 소위 CT 집담회, 혹은 Imaging Conference 등으로 불렸던 또 하나의 집담회가 생기면서 결국 서울에서는 한 달에 2번 집담회를 갖게 되었다. 그 당시 미국과 일본에서 임상에 흔히 이용되는 CT, 초음파검사가 국내에서도 이용되면서 한국 방사선과학의 큰 분수령을 넘고 있는 중이었다. 1977년 가을 경희대학병원에 한국 최초의 CT가 설 치되고, 이어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학병원, 한양대학병원 등에 CT와 함께 1979, 1980 년에 초음파진단기도 설치되었다. 그 당시 외국에서 CT 등 새로운 방사선과학을 공부한 의사로는 연세대학교의 서정호가 2년간 신경방사선과학을 연수한 후 귀국하였고 그밖에 김순용, 한만청, 함 창곡이 단기 연수 후 귀국하였으며 그 즈음 뉴욕 코넬대학병원에 근무하던 오용호(吳勇鎬)가 1개월 씩 두 차례 영상 중심의 미국 최신방사선과학을 한국에 도입시키고 있었다. 나머지 방사선과 의사 들은 주로 외국잡지를 보며 실제 경험한 증례를 중심으로 공부하였다. 이렇게 탄생된 Imaging Conference에서는 CT가 주로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초음파검사가 검사자 외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때문으로 생각된다. CT 증례는 뇌검사가 대부분이고 복부검사가 약간 있었으며 종격동 종양이 가끔 발표되었다. "Image 집담회" 가 계속되는 동안 CT를 사용하던 병원의 중견의사들, 즉 서정호, 함창곡, 서수 지(徐修之), 장기현 등은 틀에 박힌 증례 발표회에 만족하지 않고 더 깊고, 더 넓은 지식을 교환하 는 모임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고, 그러자면 전공의 등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는 깊 은 토론을 할 수 없으므로 적은 수의 staff끼리의 closed meeting을 따로 만들게 되었다. "staff 집담회"라고 명명된 이 집담회가 결성된 것은 1981년경이었다. 이 "staff 집담회"는 종래의 레지던 트 집담회, 즉 image 집담회와 함께 계속되었다. "Staff 집담회"에서는 주로 CT 증례가 토론되었는데 뇌, 복부, 흉부 등 CT의 모든 예가 토의되 었다. 이즈음 신경방사선과학을 전공하는 회원과 복부방사선과학을 전공하는 회원이 함께 모여 뇌 와 복부 증례를 함께 토의하는 것이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또한 회원이 많아지면서 일부 회원들이 자연스럽게 신경방사선과학을 전공하는 staff과 복부방사선과학을 전공하는 staff으로 갈라지게 되 었다. 먼저 신경방사선과학 모임이 따로 이루어지자 자연스레 복부방사선과 전공 staff들도 따로 모임을 갖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때가 1983년 가을이었다. 이때부터 전공별로 따로 집 담회를 갖기 시작하였고 이 모임이 발전하여 각 분야의 연구회가 발족되어 분야별로 증례를 토의하 면서 학문 교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