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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방사선과 장비현황
   
개요
  방사선장비의 총 수량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1995년 초까지 국내 병,의원에 보급된 초음파진단기가 약 10,000대, CT가 약 700대, 그리고 MR이 110여대 정도로 추정된다. 장비의 양적인 팽창은 의료보험 체계의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어쨌든 그것은 방사선의학 발전에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최신 장비가 본격적으로 진료에 도입되기 전에는 질병 진단이 제대로 될 수 없었 고 따라서 방사선과 의사들의 경험도 일천하였다. 실제로 단순촬영과 바륨조영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에는 방사선과 의사의 역할이 미미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오전에 투시하고 오후에 판독하는 것이 방사선과 의사의 역할의 전부였다. 따라서 임상의사들의 의존도 역시 매우 낮았다. 의료장비의 발달은 점차 객관적인 자료에 의한 진단을 요구하게 되었고 특히 CT, 초음파검사와 MR이 도입되면서 방사선과에서 행하여지는 영상진단이 임상진단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등장하여 방사선과 의사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그에 따라 진단방사선과 전문의의 수요도 증가하게 되었다. 또한 혈관촬영장치 및 투시장치의 현대화로 중재적방사선과학이 보편화되었고 컴퓨터의 발달에 힘입은 영상 저장 및 전달 체계(PACS)가 전에는 미래의 가능성만으로 이야기되어 오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현실화되었고 1994년 PACS학회가 창립되어 본격적으로 발전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주요 대학병원의 진단방사선과 교수는 3-4인이었던 것이 1990년대 이후, 즉 본격적인 영상진단 시대에 들어서는 7-8인 이상으로 내과교수의 수 다음으로 많아졌다.
   
CT 의 증가
  CT가 대학병원에서 첨단 기기로서 매스컴에 집중 보도되고 또한 검사료도 보험에 구애를 받지 않고 높게 책정되어 있어서 다른 대학병원과 종합병원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구매하기 시작하여 보 급이 빨라졌다. 심지어 몇몇 개인의원에서도 CT를 갖추어 인근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으로부터 환 자를 의뢰 받아 검사를 하게 되면서 국민 개보험으로 나빠진 병원 재정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하여 CT는 첨단의료장비의 대표주자로 되는 영광과 비판을 동시에 받기도 하였다. 1985년대에 약 50대 (그 당시 영국이 50대 정도)였고 10년 후인 1995년에는 약 700대 정도로 증가하였다. 1993년경부 터는 국내에도 나선식(spiral) CT가 등장하여 진단의 정확도가 높아졌고 여러 가지 입체 구성 및 CT 혈관촬영술 등이 보편화되었다.
   
초음파진단기 설치의 증가
  초음파진단기는 환자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많은 정보를 제공하여 주기 때문에 복부와 골반, 심 장병의 진단에 필수적이다. CT나 MR과 마찬가지로 보험가격에 규제 받지 않으므로 병원 재정에도 큰 역할을 하여 보급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또한 복부 질환 진단에 우수하므로 건강진단 프로그 램에 복부 초음파검사는 빠뜨리지 않는 필수절차가 되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는 검사가 빠르고 편리하며 해상력이 우수한 진단기가 계속해서 쏟아졌기 때 문에 static scanner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고 주로 real-time scanner를 여러 병원에서 진료에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1984년경에 전국에 약 1,000대의 초음파가 보급되었다. 초음파진단기는 주로 미국과 일본에서 수입하여 사용되었는데 1980년 중반부터는 일부 일본제품 이 국내 대리점과의 기술제휴로 계림상사, 중외의료기 등에 의하여 국내에서 조립생산되어 저가품 으로 소규모 종합병원 및 의원급에 많이 보급되었다. 국내에서는 한국과학기술원에서 박송배팀을 주축으로 연구가 진행되었고 과학기술원의 한 연구원이었던 이민화가 "주식회사 메디슨"을 설립하 고 상품을 개발하여 1985년 국내에 초음파진단기를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해상력도 좋았고 값도 저렴하여 국내 개인의원이나 준 종합병원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또한 동남아와 중동, 그리고 구미에도 수출하기에 이르렀고 1993년에는 Sonoace 4800 기종이 생산되었으며 1994년에는 색도플러 진단기의 개발에도 성공하여 연간 5,000대를 생산하면서 국내에는 물론 전세계로 수출하기에 이르 자 순수한 국내기술로 초음파진단기를 세계로 수출하는 유명한 회사가 되었다. 색도플러 초음파진단기는 1990년경부터 도입되어 사용되었고 종합병원급에서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MR의 생산과 도입
  초음파진단기 및 CT 등의 단면영상술이 구미 선진국에서 실용화되기 시작한 1970년대 초반에 강 한 자장을 이용하여 인체를 구성하는 각 장기의 수소원자 핵을 자극한 다음 이의 이완계수 차이를 이용하여 인체의 단면영상을 얻는 자기공명영상술의 개념이 확립되기 시작하였으며 1980년대 초반 에 이르러서 이의 임상활용이 이루어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자기공명영상 분야에 선도적 역할을 하던 조장희가 귀 국하여 한국과학기술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자기공명영상기 개발에 착수하여 1983년에 최초로 0.15 테슬라의 상전도 자기공명영상기의 시제품 제작에 성공하였다. 이 당시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가동되는 자기공명영상기의 임상시험을 위하여 서울대, 연세대, 경희대, 한양대 등의 소장 교수들 이 정상군으로서 자기 자신의 영상을 얻거나 혹은 환자의 진료를 위하여 홍릉 소재의 한국과학기술 원에서 초기의 임상적 경험을 경쟁적으로 쌓기 시작하였다. 당시 경희대학교의 김순용(金舜鏞)은 환자의 진료에 이용하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 당시의 선구적 노력의 결과로 박재 형(朴在亨) 등은 1985년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한 혈류속도의 측정에 관한 논문을 북미방사선의학회 에서 발표하여 그 분야에 관한 국내의 연구로서는 최초로 북미방사선의학회에 발표된 것이 되었다. 또한 한만청 등은 1985년 영문판의 방사선학적 해부학 교과서인 Sectional Human Anatomy에 자 기공명영상을 수록하였다. 전술된 상전도 자석의 자기공명영상기는 2.0 테슬라의 초전도자석의 자 기공명영상기의 시제품이 완성된 1986년까지 연구 및 진료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상전도 자석 자기공명영상기의 상품화는 1984년 조장희의 연구진과 금성사와 산학협동하에 최초 로 이루어져 제1호기가 서울 소재의 개인병원인 신화병원에 설치가 되었다. CT가 무분별하게 도입 된다는 언론 비판과 함께 보사부에서 CT 설치를 규제하기 시작하자 일부 병원에서 병원 위상도 높 이고 경제적으로 도움도 받기 위하여 CT 대신 MR을 도입하게 된 것이 한국 최초의 MR이 대학병원이 아닌 개인병원에 설치되게 된 이유이었다. 그 이후로 3대의 같은 기종이 국내의 개인병원에 설치되 었으나 상전도 자석이 갖는 영상 해상력의 한계, 자기공명영상장치에 내재된 다양한 기준를 활용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을 갖춘 방사선과 의사의 부재, 설치된 영상기의 최선의 기능을 유지하는 기술 적 서비스의 미비 등으로 인하여 널리 이용되지 못하였다. 1987년에 서울대학병원에 상품화 제품으로서는 세계의 최초인 2.0 테슬라의 초전도자석의 자기 공명영상기(금성사, Spectro 20000)가 설치되면서 우리 나라에 본격적인 자기공명영상 시대가 시작 되었다. 이 당시 Spectro 20000의 화질은 미국의 General Electric회사나 독일의 Siemens회사 제품 에 손색이 없는 것으로서 세계적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이후로 같은 기종이 계명대학병원에도 설 치되었으나 이 모델 역시 당시의 앞선 기술의 유지 및 개발에 대한 투자의 부족으로 시시각각으로 발전하는 구미의 대회사 제품의 발전 속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제3호기 이후로 생산이 중단되었다. 우리 나라에 설치된 이 최초의 자기공명영상기는 초기의 일반X선진단기, 초음파진단기 및 CT진 단기 등이 외국으로부터 도입 설치된 것인데 반하여 순수한 우리 나라 기술진에 의한 연구개발 제 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고, 또한 개발도상국가이던 1986년 당시 세계에 기술한국의 이름 을 알렸다는 점에서도 크게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일천한 산학협동 구조 및 의료기 분야 투자 규모의 왜소성에 의하여 계속 발전하지 못하고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된 점은 퍽 아쉬운 일이다. 이즈음 보사부에서는 국내기술보호를 이유로 MR 수입을 금지시켰으며 약 2년 동안 외국산 MR이 수입되지 못하다가 1989년에 규제가 해제되어 본격적으로 외국산 MR이 설치되면서 1995년에 112 대 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MR도 역시 검사가격이 보험규제를 받지 않아 병원의 흑자경영에 큰 역할을 하면서 신경방사선과 학에서 각광을 받았고 특히 단순촬영이 거의 전부인 근골격계방사선과학에 일대 전환점을 가져다주 었다. 이즈음 근골격계방사선과를 전공하는 전문의가 많아진 것을 보아도 MR의 역할을 알 수 있 다. MR은 타 분야에서는 골반질환이나 간 종괴의 감별에 유용하게 이용되었으나 그 외의 분야에서 는 초음파검사와 CT가 주로 이용되고 있다.
   
PACS의 설치 및 사용
  PACS(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는 X선 등 방사선학적 검사 결과를 필름으로 만들지 않고 컴퓨터에 저장하여 이것을 컴퓨터 모니터를 통하여 진단하고 그 결과를 임상의사에게 보내어 진료에 사용하게 함으로써 필름 관리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장치이다. 10여년 전부터 연구 를 시작하여 본격적인 진료용 PACS는 1990년대에 개발되었는데 국내에서는 삼성서울병원에서 미국 Loral사 제품을 1994년 10월에 설치하여 사용중이며 서울대학병원과 서울중앙병원 등 기타 여러 병 원에서 개발중이다. 물론 적은 규모의 소형 PACS는 대학병원을 비롯하여 이미 여러 병원에서 사용 중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원격진료(telemedicine, teleradiology)는 경북대학병원, 전남대학병원에서 방 사선과 전문의가 없는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부터 전화선 혹은 T1 line을 이용하여 방사선 사진을 전송 받고 판독결과를 보내주는 컴퓨터를 이용한 진료방법이며 한국통신의 정책사업으로 시행중에 있다.
   
기타
  1983년 서울대학병원에서는 의공학과장 민병구와 진단방사선과와의 공동연구로서 디지털 감산혈 관조영술(DSA; Digital Subtraction Angiography) 기기를 개발하여 잠시 사용하였으나 DSA의 우수 한 성능을 가진 첨단 혈관촬영장치의 도입으로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했다. 1986년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에서 처음으로 일본 후지사에서 제작한 컴퓨터촬영기 FCR(Fuji Computed Radiography)를 도입함으로써 일반촬영의 디지털화가 시작되었다. FCR 설치의 경비문제 로 의료보험에서 촬영료 및 판독료에 30%의 가산료를 받게 되었으며 1994년에 신설 대규모 종합병 원인 아주대학병원, 서울삼성의료원 등에 여러 대의 FCR이 설치되었고 PACS가 설치된 삼성의료원의 경우 모든 일반촬영을 FCR로 처리함으로써 보험급여의 기준이 다소 수정되었다. 1980년대에는 의료 기기뿐만 아니라 소모품의 혁신적인 발전도 있었다. 특히 중재적방사선과학 의 도입으로 세계 굴지의 카테타 제조회사들은 산학협동으로 새로운 제품의 개발에 힘을 쏟아 중재 적방사선과학의 발전에 견인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