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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학회 조직 및 회원의 변화
   
학회 조직
  학회가 이사장 중심제로 바뀌어 제1대 이사장(1974-1978; 한만청;韓萬靑)에서 제2대 이사장(1978-1982; 박수성;朴琇誠)까지는 이사장이 소속된 병원의 젊은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이사장이직접 실무를 담당하였다. 점차 학회 일이 많아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1983년 제3대 이사장(1982-1986; 박창윤;朴昌潤)때 업무의 전문화를 위하여 상임이사제를 도입하였으며총무·재무(진수일;陳秀一), 학술·간행(김춘열;金春烈)과 수련·고시(함창곡;咸蒼谷) 담당 등 3명의 상임이사가 실무를 담당하였다. 제4대 이사장(1986-1990; 김주완;金周完)부터는 총무·재무(한창열;韓昌烈), 학술·간행(서정호;徐廷鎬), 수련·고시(김건상;金健相) 및 의무·보험(함창곡) 등 4명의 상임이사로 시작하여 2년 후 기획(진수일)상임이사가 위촉되어 5명의 상임이사가 실무를 담당하였다. 제5대 이사장(1990-1993; 진수일)부터는 이사장 임기가 4년에서 3년으로 바뀌었고 총무·재무, 학술·간행, 수련·고시, 보험 및 기획 이사 등 5명의 상임이사가 실무를 담당하고 편집위원장과 국제협력위원장을 별도로 두어 관련 업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제6대 이사장(1993-1996; 서정호)부터는 상대적으로 업무의 양이 많았던 수련·고시이사를 수련이사와 고시이사로 분리하여 총무·재무, 학술·간행, 수련, 고시, 보험 및 기획 이사 등 6명의 상임이사와 편집위원장, 국제협력위원장을 두었으며 이때부터 편집위원장과 국제협력위원장을 상임이사회의에 참석케 하였다. 이처럼 상임이사의 수가 점차 증가하게 된 것은 학회의 일이 많아지고 전문성이 필요하여졌기 때문이며 분야를 세분화함으로써 좀 더 체계적으로 학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각 상임이사들은 이사장을 보좌하면서 학회 업무를 어느 정도 독자적으로 운영하였다. 이 상임이사제의 도입은 학회 발전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학회에서 근무하는 직원도 처음에는 검진협회직원이 학회 일을 겸임하였으나 1984년부터는 독립적으로 1명, 1992년부터는 2명, 1993년부터는 3명으로 증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학회지 심사와 편집에 관한 작업도 1984년까지는 편집위원장이 직접 실무를 담당하였으나 그 이후부터는 접수 및 심사과정 등의 행정적인 일을 학회 직원이 담당하게 되었다. 1988년 총회에서 정관을 개정하여 차기이사장제를 채택하였으며 이는 이사장 임기만료 1년 전에차기이사장을 선출하여 1년간 상임이사회에 참석케 함으로써 학회 회무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1989년 진수일이 차기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전문의 수급 및 회원의 현황
  방사선과 전문의가 과잉배출되어 전문의가 봉직할 병원이 없고 따라서 방사선과 전문의 봉급이 형편없이 낮아졌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제사정이 좋아지고 전공의 수가 증가하면서 자연히 전문의 배출이 증가하였고 이들은 각 종합병원 및 대학병원에서 증가 추세에 있는 CT, 초음파검사 같은 특수검사를 중심으로 전보다 높은 질의 의료서비스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1984, 5년경 전문의 배출 수와 병원의 방사선과 전문의 수요의 균형이 맞지 않게 되어 점점 취직하기가 어려워졌다. 더구나 1983년에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3년차와 4년차가 동시에 전문의 자격을 얻으면서 수급의 부조화가 심화되었다. 그러자 각 대학병원 지도 전문의들이 중심이 되어 전공의 수를 조절하여 전문의 수요를 조절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1984년 전국 수련병원 과장회의를 소집하여 전공의 수급에 대하여 심각하게 논의한 결과 대형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에서 자발적으로 전공의 수를 1/4씩 줄이기로 하였다. 또한 1986년에 학회에서 서울대학병원 부설 병원연구소에 용역을 주어 "진단방사선과 전문의 수급계획"을 연구케 하여 전문의 수급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러한 전문의 수급의 부조화는 약 3-4년 계속되다가 1990년 초부터 완화되고 얼마 뒤 전문의 수가 모자라는 역현상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CT, 초음파, MR 등의 새로운 장비가 많이 도입됨에 따라(병원에서 수익을 맞출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비이므로) 중재방사선과 의사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1991년에는 의료법이 다시 바뀌고 전공의 과정이 다시 4년으로 바뀌게 되자 전문의가 더욱 모자라게 되고 특히 신설 대형 종합병원이 많아지면서 전문의 부족 현상이 더욱 심화되게 되었다. 대한방사선의학회원은 1995년 2월 현재 1,175명이고 이 중 1,157명이 생존하며 이 중 재미회원과일부 연락이 두절된 회원을 제외하면 현재 933명이 활동중이다. 그 중 224명은 개원 활동중이고 412명은 봉직활동중이며 297명은 대학병원에서 교육과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외국연수중인 의사가 약 40명 정도이다. 1995년에 새로운 전문의가 122명 탄생하였다. 전공의는 1995년에 1년차 189명, 2년차 182명, 3년차 159명, 그리고 4년차 136명으로 총 666명이다. 현재 전공의는 1,2년차가 180명 이상으로 2000년대에는 전문의가 과잉 배출될 것으로 보여 다시 한 번 어려움을 겪게될 전망이다.
   
개원의 현황
  방사선과 전문의가 개원한 방사선과의원은 1984년에 약 90명이던 것이 1994년에는 약 220명으로 10년간에 2.5배 정도 증가하였다. 이것은 방사선과 의원으로도 개원에 성공할 수 있으며 지역사회 의료에 봉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에는 개인 내과, 외과 의원에서 X선 장비를 갖추어 놓고 방사선 검사를 자가 의뢰하여 방사선과 전문의의 역할이 미미하였으나 국 민 개보험과 1989년의 의료전달 체계의 시작으로 방사선과 개원의의 역할의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특히 1985년 의료보험 시행규칙이 변경되면서 과거에 모든 병,의원에 급여되어 오던 진단방사선과 특수검사의 판독료가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는 병,의원의 경우 진단방사선과 전문의의 소견서를 첨부한 경우에만 청구가 가능하도록 하여 진단방사선과 전문의의 역할 증대의 큰 요소가 되었다. 1990년대 초부터 CT와 MR, 초음파검사기는 물론 유방촬영기, 골밀도 측정기 등 종합병원에서만 사용하던 장비를 방사선과 의원에서 갖추어 놓고 환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용하도록 하였으며 전문 의 1인이 전담하던 진료를 2인 이상 복수 전문의가 진료를 담당하게 되어 개인 의원 진료의 질과 양을 높였다. 1995년 현재 서울 등 대도시는 물론 소도시에 소재 하는 진단방사선과 개원의원에도 CT가 다수 설치되었으며 서울, 광주에 있는 4개 진단방사선과의원에 MR이 설치되어 지역 병,의원 및 심지어 대학병원에서 의뢰된 환자를 취급하게 되고 의원급에서도 세부전공 분야에 따라 판독을 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