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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장비의 현대화
   
개요
  초음파 및 CT의 임상적 이용은 1895년 뢴트겐의 X선 발견 이후로 투사영상의 시대에서 단면영상 의 시대를 열었다는 의미에서 제2의 X선 발견이라 할 수 있는 큰 의미를 갖는다. 초음파나 CT는 기 존의 고식적 X선 진단방법과는 전혀 다른 해부학적 지식을 요구하였고 또한 영상 형성의 물리학적 개념이 전혀 새로운 것으로서 이의 임상적 이용이 점차 보편화되면서 방사선과 의사의 전문성과 고 유의 역할이 점차 확고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초음파 및 CT의 도입은 뇌신경계와 같이 뼈에 둘러 쌓여 있거나 복부와 같이 연조직으로만 구성 되어 있어서 기존의 X선 투사영상으로는 내부를 영상화할 수 없던 장기의 진단에 특히 혁신적 역할 을 하였으며 이에 따라 방사선학적 단면해부학에 관한 연구의 비중이 급증하는 계기가 된다. 단면영상기 도입의 혁신적인 의의는 기존의 투사영상에서는 종괴가 있을 때 종괴 자체는 보지 못 하고 종괴에 의하여 변형 및 전위된 주위 장기를 분석하여 간접적으로 미루어 진단하였는데 비하여 초음파 및 CT는 종괴 자체를 직접 단면영상으로 표출 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동시대에 유사한 기능을 하는 서로 다른 진단기가 출현하면서 환자에게 가장 적게 부담을 주고 가장 단시일 내에 진단에 이를 수 있는 검사의 순서(algorythmic approach)가 강조되기 시작한 것 도 이 시기이다.
   
초음파 진단기의 도입
  초음파의 이용에 관한 아이디어는 1912년 Titanic호의 침몰 후 수중에 있는 물체를 찾는 방법에 대한 필요성의 논의가 효시라 할 수 있고, 그후 실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구축함이 잠수함의 위 치를 파악하기 위하여 미 해군에서 처음 사용하였다.(Sound Navigation And Ranging system, SONAR) 인체의 단면을 흑백의 다단계의 명암으로 영상화할 수 있는 B-mode gray scale 기기가 개 발되어 초음파의 의학적 이용이 활기를 띄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후이다. 서울대학병원의 김주완은 초음파진단기의 임상이용에 선두적 역할을 하였으며, 1978년에 진료에 실용되는 초음파진 단기로서는 최초로 도입된 Picker회사제 static compound 스캐너인 80L(동년 서울대학병원 2대, 중 앙대학부속 필동성심병원 1대 도입됨)을 사용하여 "초음파 진단 자험 1018례에 관한 고찰"을 1979 년 대한방사선의학회지 제15권 2호에 게재하여 초음파진단에 관한 우리 나라의 최초의 논문이 되었 다. 이러한 김주완의 선두적 역할은 후에 대한초음파의학회를 방사선과 의사가 주도적으로 창립 및 운영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 당시에 사용된 static scanner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real-time scanner와는 달리 의사가 일 정부위를 연속 스캔함으로써 얻어지는 각각의 영상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영상형성에 소요되는 시간 이 길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 있었던 real-time scanner는 영상의 질이 static scanner보다 현저하 게 떨어져 수련병원의 자격 요건은 static scanner의 설치였고 이 때문에 real-time scanner가 있 는 병원에서도 static scanner가 있는 병원으로 수련의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초창기의 초음파진단기는 해상력이 좋지 않았고 초음파진단기의 특성상 검사자 이외의 의사가 촬영된 영상을 이해하기 어려워 보편적 파급이 다소 지연되기도 하였으나 검사가 간편하고 환자의 부담이 CT보다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점차 그 역할이 증대되었고 CT와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CT 스캔의 도입
  CT 스캐너는 영국의 전자회사인 EMI에서 근무하던 물리학자 Hounsfield G가 1960년대 초에 공항 의 세관 관계자로부터 상자에 포장된 내용물의 포장을 풀지 않고 파악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요청 을 받고 목표물을 X선 촬영을 하되 방향을 달리하여 다중촬영한 후 그 데이타를 컴퓨터로 계산하여 단면의 모양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이디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1964년 Cormack AM은 물체를 7.5 도씩 방향을 달리하여 투사한 후 물체단면의 감쇄계수를 계산하여 학술지에 발표 한 바 있다. 그 후 그는 네덜란드의 신경과의사인 Ambrose와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이 방법을 인체 의 진단에 이용하려는 생각을 구체화되었고 수학적 계산에 관한 문제점을 직접 해결함으로써 비로 소 임상이용이 가능한 prototype unit인 EMI head scanner(Mark I)를 1972년에 영국의 Atkinson Morley's Hospital에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당시 이 기계는 한 영상당 4.5분의 조사시간, 1.5분의 영상재구성, 80 x 80 개의 화소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77년 경희의료원에 1976년형의 EMI회사 5050 기종이 최초로 도입된 이래 1978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 Ohio Nuclear회사의 Delta 50 FS2, 1979년에는 서울대학병원에 General Electric사의 CT/T 7800, 한양대학병원에 Delta 50 FS2가 설치되어 진료에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임상적 경험을 경희대학교의 김순용은 1978년 대한방사선의학회지 14권 2호에 "腹部淋巴節 의 電算化斷層撮影"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하였으며 이는 CT에 관한 우리 나라 최초의 논문이 되었다. CT는 촬영시 환자의 위치가 일정하여 촬영되어 나온 영상이 촬영기나 환자의 영향을 적게 받고 인체단면 전체의 윤곽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초음파보다 강점이었으며 이 때문에 보급 초창기부터 진료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초기의 CT는 1개의 영상을 얻기 위하여 GE CT/T 7800의 경우 9.6초의 스캔시간과 5-8초의 스캔 간 정지기간이 있었고, 화소(pixel)의 숫자도 256 x 256 개로서 영상의 질이 떨어졌으나, 그후 스 캔시간도 단축되고 화소의 숫자도 증가하면서 영상의 뚜렷한 향상이 있었다. CT의 보급 초창기에는 두경부의 검사가 주종이었으며 외상으로 인한 두개강 내의 출혈이나 뇌종 양의 진단과 범위 파악의 면에서 CT는 진료의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게 하였다. 이에 비하여 흉부나 복부의 검사에서는 CT의 이용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고 근골격계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화질이 보다 개선되면서 흉부 및 복부질환의 진단에 CT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부위별 검사에 관한 서울대학병원의 통계에 의하면 1980년에는 두 경부 79%, 흉부 13%, 복부 18%였으나, 1990년에는 두경부가 43%로 줄어든 반면 복부는 32%로 증가 하였고, 흉부는 구성비에 변화가 없었다. CT의 기술적인 면도 발전하여 조영제 주입후의 역동적 CT, 고해상 CT 등이 임상에 이용되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이다.
   
기타 기기의 도입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X선 투시촬영기의 영상증폭 장치에 TV모니터를 연결하여 투시된 영상을 모니터를 통하여 실내등이 밝혀진 상태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의 도입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방사선투시 전에 눈의 암순응(dark adaptation)을 위하여 붉은 색 고글을 착용하고 기다리던 과거의 풍경이 우리 나라 최초의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아울러서 자동현상기의 도입도 가속화되어 진료의 시간적 단축과 X선 화질의 정도 관리 면에서도 발전하게 되었다. 한편 X선 TV장치의 발전과 함께 혈관촬영장치도 1980년 초까지 전국의 대학병원 단위에 도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