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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중재적방사선과학의 태동
   
개요
  혈관조영술 등의 침습적 방사선학적 검사가 1958년 서울에 국립의료원이 설립되면서 혈관촬영기 등의 첨단 방사선장비가 설치되고 스칸디나비아 3국의 우수 의료인력이 내한하여 진료에 임하면서 이들을 주축으로 시작되었고, 모든 방사선과 특수검사를 방사선과 의사가 시행하는 스칸디나비아 방식에 의하여 강석린, 권태수 등이 검사방법을 배워 시술하였다. 그러나 국립의료원이 외국원조에 의하여 운영되고 또한 무료환자를 선택적으로 받았던 특수한 운영상의 문제로 제한된 환자에만 진 료의 혜택이 부여되어 일반인은 이용이 어려웠다. 국립의료원 이외의 일부 병원에서는 1960년대 후반 및 1970년대 전반에 혈관촬영용 장비가 도입되어 침습적 방사선학적검사가 시작되었다. 특히 1971년 Seldinger 방법을 이용한 심혈관촬영술이 서울대학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시술되면서 이 검사 방법이 점차 보편화되어 과거 위장관 투시검사를 제외한 X선 특수검사에 극히 소극적이었던 방사선 과 전문의들이 각종 특수검사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73년 대한방사선의학회지(제9권 131-134) 에 게재된 강석린의 "특수검사에 대한 방사선 전문의의 태도"는 당시 소극적이었던 방사선과 전문 의들의 특수검사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혈관촬영술의 보급과 함께 진단 뿐 아니라 투시를 이용한 관내 이물질의 제거, 협착부의 확장 등의 치료적 시술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방사선과학 분야의 중요한 한 부분인 중재적방 사선과학이 태동하였다. 또한 이 심혈관 및 중재적방사선과학 개념의 태동은 이어서 신경, 소아 등 의 세부전공 개념의 태동으로 이어져 오늘날의 장기 및 기기 중심의 세부전공 개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Seldinger 방법의 보급 및 정착
  1956년 스웨덴의 Karolinska 대학병원의 방사선과 의사였던 Seldinger는 와이어의 유도하에 카 테타를 혈관내에 삽입하여 원하는 부위에 카테타를 위치한 후 혈관조영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 안하였는데 이는 심장 및 혈관질환 및 치료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의 침습적 방사선학적 검사는 전술한 바대로 1958년 서울에 국립의료원이 설립되면서 혈관촬영기와 급 속필름교환기, 자동현상기 등의 첨단 방사선장비가 설치되고 스칸디나비아 3국의 우수 의료인력이 내한하여 진료에 임하면서 이들을 주축으로 시작되었고 1960년대 후반 및 1970년대 전반에 걸쳐 혈 관촬영용 장비가 일부 병원에도 도입되면서 침습적 방사선학적 검사가 시작되었다. 서울대학병원에서는 한만청이 하바드대학의 Brigham and Women's Hospital에서 수학한 후 1971년 귀국하여 Seldinger방법을 이용한 시술을 최초로 시행한 이후 5년이 내에 1000건 이상을 시술하기 에 이르렀고, 타 병원에서도 시술 건수가 급속히 증가하였다.
   
중재적방사선과학의 태동
  중재적방사선과학(Interventional Radiology)이라는 용어는 1967년 Margulis AR가 처음으로 사용 한 후 오늘날의 방사선과학의 세부전공분야의 하나로 자리 잡았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Seldinger 방 법을 이용한 혈관조영술이 활발하게 시술되던 1970년대 후반에 그 개념이 생겨났다. 1978년 12월에 출간된 대한방사선의학회지 14권 2호에 게재된 한만청 등의 "行動的放射線科學"이라는 논문에서 저 자는 "방사선과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데 있어서 진단만으로 그칠 경우 환자중심으로 볼 때에 그 역 할은 일종의 지원적인 것이며, 피동적, 소극적인데 반하여, 장중첩증의 정복술과 같이 방사선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진단에 이어서 치료까지 행하게 될 때에는 진료의 주체가 되며 적극적이고 행동적 인 것으로서 방사선과학 분야가 추구하여야 할 특수한 분야"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논문은 비수술 적 잔류담석제거술, 비수술적 담도확장술, 대량 장출혈의 에피네프린 주입지혈, 간암환자의 간동맥 인공폐색 등의 중재적시술의 경험을 발표하면서 행동적 방사선과학을 주창하였다. 상기한 시술은 오늘날 중재적시술의 중심이 되는 것으로서 이는 곧 대한방사선의학회의 중재적시술 분야의 효시라 할 수 있고 아울러 세부전공분야(subspecialty)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세부전공분야(subspecialty) 개념의 태동
  방사선학적 검사의 방법이 다양해지고 특정 분야에서는 검사를 수행함에 있어서 깊은 지식과 많 은 경험이 요구됨에 따라 방사선과학 중에서도 세부분야의 전공에 관한 필요성이 1970년대 말에 제 기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특히 심혈관조영술을 기본으로 한 중재적방사선과학 개념의 태동과 초음 파진단기 및 CT의 등장 등으로 부분적으로 실체화되기 시작하였다. 과거에는 진단방사선과학의 전 분야를 모든 전문의가 순환근무하는 방식을 택했으나 실제적으로 1970년대 말에 CT가 도입되면서 일부 뇌신경계의 해부학을 공부한 전문의만이 신경계 CT를 판독할 수 있어 이 때부터 세부전공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어서 초음파의 도입이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 당시 세부전공의 개념은 심혈관 및 중재적시술, 신경방사선과학, 복부방사선과학 및 소아방 사선과학 등의 장기 중심의 구분과 혈관조영, 초음파진단 및 CT 등의 진단기 중심의 구분 개념이 혼합된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전공의(당시 명칭 수련의)의 수련과정에도 영향을 주어 1970년대 말 서울대학병원의 경우 4년차 기간 중 6개월의 자의선택과정(elective course)을 주었으며 이 과 정의 선택은 후일 전문의가 되어서 세부전공을 선택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초에는 세부전공분야의 전문의들이 경험과 지식의 교류를 위하여 모임을 갖기 시작하 였고 특히 1981년에 시작된 CT모임은 뒤에 신경방사선과학연구회와 복부방사선연구회의 모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