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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이사장 중심제도의 도입
   
회장중심제의 운영
  대한방사선의학회는 창립때부터 회장중심제의 회칙을 제정하여 1945년부터 1961년까지는 임기를 3년, 1961년부터 1969년까지는 임기를 2년으로 이부현(李富鉉), 조중삼, 안치열(安治烈), 주동운 (朱東雲) 등의 4인이 초대부터 10대까지의 회장을 연임 및 중임을 하여 왔으나 1969년에 회칙을 개 정하여 회장, 부회장의 1년 단임제로 하고 부회장은 당연직 차기 회장으로 하였다. 이에 따라 1970 년부터 1974년까지 학회의 핵심집행부 전원이 1년 간격으로 교체되자 업무의 계획 및 추진에 있어 서 연속성과 일관성 유지에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대한방사선의학회의 규모의 팽창과 발전의 속도가 가속되면서 이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이사장 중심제의 도입
  1974년 강석린(姜錫麟)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전술된 배경 하에서 업무의 연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계획과 추진을 위하여 이사장 중심제가 채택되었으며 초대 이사장으로 한만청을 선출하여 1974년 말부터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이사장의 임기는 4년이었으며 임무는 본회의 업무를 총 괄하고 이사회 및 상임이사회의 의장직을 맡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사장의 역할은 내각책임제하의 국무총리의 것과 같은 것이었고 회장의 역할은 대통령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대처 및 개원의 모임 시작
  1977년 7월 1일부터 부분적으로 시행된 의료보험제도는 보험자(의료보험공단)가 피보험자 및 피 보험자에 의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자의 질병, 부상, 사망 또는 분만에 관한 급여를 함으로써 의료 보험사업의 건전한 운영을 도모하여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는 당시 일 본의 보험제도를 원용한 것으로서 적정진료의 개념을 최소 경비 내에서의 불가피한 진료행위로 규 정하여 진료의 수가가 비현실적으로 낮게 산정 되어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 등으로 말미암아 그 이 후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낮게 산정된 수가는 당시 의료인에게 중차대한 문제였으나 당시에는 500명 이상의 종 업원을 가진 직장에만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등 실제 보험 대상 인구는 전체의 10%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많은 의료인들이 거기에 소극적으로 대처하였다. 이로 인하여 의료계는 후에 전 국민의 개보험화가 되면서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대한방사선의학회에서는 1977년 7월 16일 서울대학병원에서 의료보험을 위한 전국회원간담회를 열어 이에 적극 대처방안을 논의하였고 기 조정 수가의 30-50% 인상안이 반영되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당시 학회에서 제시하여 통과된 시가기준의 예로 "맥관조영카테타는 1 회 사용으로 하고 가이드와이어는 3회 사용을 기준으로 하여 1회 시술시에 실 구입가의 3분의 1액 을 신청한다" 등이 있다. 동년 10월 31일에는 학회장 김순용(金舜鏞), 이사장 한만청이 진료수가 책정에 관한 문제점을 관계 당국자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수가의 상향조정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학회장 및 이사장을 주축으로 하여 임원들의 적극적인 대처의 결과 타 학회의 수가보다 방사선과의 수가는 현실에 가깝게 책정되었다. 한편 의료보험의 도입은 개원가에도 큰 변혁을 초래하게 되었다. 대상 인구가 적었던 초창기에 는 큰 영향이 없었으나 1979년 공무원 및 사립교원으로 확대되는 등 점진적으로 대상인원이 늘어가 면서 수입면에서 문제가 야기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전국에 분포하고 있었던 개원의 수는 약 80인 이었으며 의료보험에 대한 개원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도 어떠한 형태건 모임이 필요한 시기였다. 1982년 8월 속리산에서 전문의 연수교육이 끝난 뒤 지방 개원회원들인 이면상(李冕相; 대전), 이길 석(李吉錫; 청주), 권충식(權忠植; 광주), 서한태(徐漢泰; 목포), 이진영(李畛永; 대구), 제삼록 (諸三祿; 마산), 김래준(金來俊; 부산) 등이 모임을 갖고 전국 방사선과 개원의 모임을 창설하기로 결정을 보았으며, 같은 해 9월 25일 부산에서 「한국방사선과의사회」 창립총외를 개최하여 회장에 이면상, 부회장에 김래준, 총무에 박한규(朴漢圭; 대전)가 선임되었다. 1982년 정기총회에서 개원의 부회장 1인을 둘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하였으며 이면상이 부회장 으로 선임되었다. 그 후 전문의 연수교육의 주제를 개원의 모임에서 선정하도록 하였으며 1983년 골관절질환의 방사선학을 주제로 하는 등 상당기간 단순 촬영을 주제로 선정하였다. 한국방사선과의사회는 몇년 후 전국규모의 모임이 없어졌으나 각 지역의 개원의 모임을 활성화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공의평가고사 제도의 도입
  전공의평가고사 도입의 필요성은 전공의(당시 수련의)의 수련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 기회가 전공의 과정 중에는 주어지지 않고 이 과정을 마치는 시기인 전문의 자격고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 현실이었던 당시의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인식 하에서 대두되었다. 이에 당 시 이사장이었던 한만청의 주도하에 1977년 2월 7일의 이사회에서 평가고시 창시안이 통과되어 동 년 6월 20일 제1회 전공의 평가고사가 서울의대 강당에서 당시 수련의 96명이 응시한 가운데 치러 졌다. 제1회 평가고시의 시험문제는 이사장이 단독으로 출제하였고 출제 내용은 방사선해부학, 병 리학, 방사선물리학, 생리학, 의학일반 등의 5개 분야로 구성되었다. 이와 같이 방사선과학 자체에 관한 출제가 아니라 기초의학 분야에 중점을 두어 출제한 이유는 방사선과는 모든 타과들과 연관을 갖는다는 점에서 수련기간 중에 다방면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출제는 제2회 (1978년)부터 제14회(1990)까지는 각 대학에서 번갈아 담당하였으며 제15회부터는 고시위원회에서 전담하게 되었다. 수험생 각 개인의 성적은 분야별로 분석되어 분야별 및 전체 득점율, 동년차에서의 석차, 전체 석차 등이 해당 수련병원 과장에게 비밀 유지하에 통보되었다. 수험결과는 개별적으로 전달되었으 며 결과에 따라 전공의 자신의 취약점이 확인되었고 지도자에게는 전공의의 자질확인, 지도방향의 설정 등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전공의평가고사는 대한방사선의학회에서 최초로 도입 시행하였고 이로부터 수년 후 정형외과를 시발로 타과에서도 시행하게 되었다.
   
방사선과전문의 및 전공의연수교육의 시작
  전문의자격 취득 이후에도 과거에 습득된 지식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지식을 신속히 습득케 함 으로써 방사선과 전문의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수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1978년 10 월 15일 동방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제1회 전문의연수교육을 시행하였고 이후 매년 1회의 연수교육을 시행하였다. 제1회 연수교육의 강의제목 및 연자는 Ultrasonography(김주완), CT in the evaluation of malignant tumor of gastrointestinal tract(이교락), Prospect of CT(Ohio Nuclear), Chest case presentation(박용휘), Recent trend in radiation oncology(김윤태), Radiology in obstructive jaundice(박창윤) 등으로 당시의 주된 관심 분야가 초음파 및 CT진단이 었음을 보여준다. 이 당시 수강료는 10,000원이었고 이수자에게는 전문의연수교육 수료증이 주어졌 다. 1979년 11월 25일에는 국립의료원에서 방사선치료를 주제로 한 제2회 전문의 연수교육이 있었 고, 1981년에 개최된 제3회 연수교육부터는 진단방사선과학 분야의 장기 및 진단기기별 구분으로 세부 주제를 정하여 시행하였다. CT, 초음파기기의 도입으로 새로운 영상진단분야가 각 병원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기 시작하였으 나 병원 및 지역에 따라 기기의 도입 시기와 종류의 차이가 심하여 전공의 교육에 어려움이 많았 다. 1981년 학회 집행부로부터 전공의 평가고사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감안하여 전공의 연수교육 을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연1-2회 시행하였다. 초기에는 다수의 전공의를 참여시키기 위하여 평가 고사 당일 오전에 시행하였으나 해당 병원들의 어려움으로 뒤에 춘계 또는 추계학술대회 다음 일요 일을 이용하게 되었다.
   
기타의 연수교육
  방사선과 이외의 개원의를 대상으로 한 연수교육도 이 즈음 시작되었는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방사선과학교실 주최의 "임상의를 위한 방사선진단"이 1978년 4월 24일 서울의대 강당에서 시행되 었으며 이는 의사를 대상으로 한 방사선과학 분야 연수교육의 효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