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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전문의제도 시작
   
전문과목의 표방
  우리 나라 의학의 발전에 혁신적인 공헌을 한 것은 서양의학과 함께 도입된 미국식 전문의제 도이다. 1951년 9월 25일 공포된 국민의료법(법률 제221호) 제4조 "의료업자는 명령으로 결정한 바에 의하여 주무장관의 허락없이 그 전문과목을 표방할 수 없다"는 조항에 의해 전문의제도가 태동되었다.
  국민의료법의 후속조치로 동년 12월 25일 보건부령 제11호 국민의료법 시행세칙이 공포되고 동 세칙 34조에 전문과목으로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비뇨기과, 정 신과, 정형외과, 방사선과 등 10개 과목이 규정되어 있었고 제 35조에 전문과목 표방허가를 얻기 위해 필요한 수련연한을 5년으로 하고 해당과목에 대한 고시까지도 시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문의제도 도입 후 초기에는 서류심사로 전문과목 표방허가증을 발급하였고 1960년 이후에는 전문의 자격고시에 의해 허가증을 발급하였다. 명칭도 전문과목 표방허가증에서 1970년대 초 전 문의 자격증으로 바뀌었다.
  서류심사로 총 19명이 방사선과 전문과목 표방허가증을 발급 받았으며 표방허가증 제1호는 1955년의 이경룡이다.
   
전문의 자격고시
  1960년 5월 4일 보건사회부는 제1회 전문과목 표방허가자 시험을 공고하였고 첫 시험이 동년 5월 24, 25 양일간 서울대학병원에서 실시되었다. 이 시험에는 324명(방사선과 8명)이 신청하여 서류심사로 219명(방사선과 4명)이 통과하였고 그 증 196명이 응시하여 모두 137명(방사선과 4명)이 합격하였다. 평균 합격률은 69.8%(방사선과 100%)이었다. 전문의 자격고시는 보건사회부 산하 국립보건원에서 관장하였으며 1973년 시험업무가 대한의 학협회로 이관되었다. 수련기관의 지정은 1957년 9월 19일의 전문과목 표방허가 심사위원회에서 전국 8개 의과대학 부속병원과 60개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지정한 것을 그 시작으로 하고 있다. 1963년에 대한의학협회 안에서 발족되어 1967년 대한병원협회로 업무가 이관된 병원신임위원 회는 수련병원의 심사, 수련과목과 전공의 정원에 관한 사항, 전공의 교육기준에 관한 사항을 다 루고 있다. 1962년 당시 전문의 시험 심사료는 200원, 고시료 300원, 회원증 발급료는 회원은 2,000원, 비 회원은 3,000원이었다. 필기시험에서 60점 이상이 되어야 실기시험을 치를 수 있었고 합격선은 평균 70점 이상이었다.
   
Kim's Plan의 도입
  한편 국방부는 군 의료인력의 확보를 위하여 자체내에서 미국 유학계획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휴전협정의 발효로 군의관이 3년만에 전역을 하기 시작하여 이 계획에 의한 고급 의료인력 확보 가 어려워지자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절실히 요구되었고, 또한 의과대학의 교직원 양성을 위한 졸업후 초기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됨에 따라 군 입대연기제도를 신설했다. 당시 국방부장관은 김정렬, 육군의무감은 정희섭, 의무차감은 김수명이었는데 미국의 Barry Plan(1930년에 시작하였 고 군의 고급인력확보를 위해 연구 및 교육기간에서 수련하고자하는 의대 졸업생에게 본인이 원 하는 기간동안 군 입대를 연기해주는 제도)을 참고하여 이 제도를 도입하였고 김정렬장관의 이름 을 따서 Kim's Plan 이라 하였다. Kim's Plan의 실시는 군의 고급 인력확보와 전문의제도에서 인턴,레지덴트 제도의 도입, 대학병원에서의 교직요원 양성 그리고 의대 졸업생에게 중단 없는 교 육 기회 제공이라는 네가지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던 획기적인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방사선과에서는 유호준, 최병숙, 한만청 등이 Kim's Plan 1기생으로 군입대연기를 받았다. 1960년대 중반 인턴의 급료는 월 2,000원 정도로 당시 금 한돈, 쌀 한가마니 가격이 5,000원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의 대우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인턴, 레지덴트는 처우 문제로 1967 년에 파동의 주역이 되었고 결과로 1969년에 급료가 3-5배 인상되었다. 당시의 전공의들은 호구 지책이 해결되지 못하여 결혼을 하지 못하였고, 결혼을 할 사람은 군에 입대하기도 하였다. 결혼 한 전공의 일부는 전공의 신분에도 야간 개업을 하여 생활하였으나 처우 문제 때문에 규제를 하 지 못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무의촌해소를 위해 전공의를 6개월씩 무의촌에 파견하였으며 이는 후에 의과대학 증설로 군의관 수요를 넘는 잉여인력의 공중보건의 동원으로 없어졌다. 전공의는 학회 에서는 피교육생으로 수련병원에서는 값싼 의료노동력으로 간주되어 그 신분과 처우에 갈등을 안 고 있었다.
   
전공의 파견수련
  1964년의 대한방사선의학회가 지정한 수련병원 기준요건을 보면 전문의가 있어야 하고, 200mA 이상의 촬영기와 220kVp 이상의 치료기를 구비해야 하고, 진료실적으로는 연간 5,000건 이상의 X선 진단과 500명 이상의 특수진단을 요구하고 있었다. 또한 교과과정으로 방사선 치료 6 개월 이상, 동위원소 3개월 이상, 병리교육 3개월 이상을 이수하도록 정하여 두고 있었다.
  1965년 응시자격요건으로 치료기가 없는 병원에서 수련을 받은 자는 수련기간 4년중 6개월 이 상을 치료기가 있는 병원에 파견수련할 것을 명시하고 있어 장비의 구비가 필수요건이 아니었음 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환자 실적에 관한 요건을 추가하여 촬영인원 1일 25명(2명 이상의 특수촬 영 포함)이고 연간 8,000명 이상이어야 하며 치료환자는 1일 5명 이상 연간 600명 이상일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요건들은 점차 완화 내지는 추가되어 1970년대 초에는 치료 3개월, 동위원 소 3개월 파견수련을 규정하고 있었으며 동위원소 파견수련은 원자력원에서 실시하는 동위원소 취급자 특수면허를 취득하는 것으로 대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한동안 원자력원에서 실 시하는 동위원소 강습에 모든 방사선과 전공의들이 의무적으로 한번씩은 수강을 하여야 하는 상 태였다.
   
원자력원의 창설과 대한핵의학회 창립
  1958년 원자력법이 공포되었고 1959년 1월 원자력원이 창설되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강조되던 시기였으므로 원자력원에 방사선의학연구소가 설립되었고 부속병원이 함께 개원하였다. 초대 소장에 부임한 안치열은 1968년에는 원자력청장이 되었다. 1962년에는 원자력원에 Triga Mark II가 설치, 가동되면서 방사선동위원소의 국내생산이 시작되어 국내 핵의학분야가 활기를 띄게 되었다. 1960년 서울대학병원에, 1962년 세브란스병원에 각각 동위원소실이 개소되었다. 1962년 한일병 원에 국내최초로 감마선 원격치료장치인 Cs-137심부치료기가 도입되어 김정진이 암환자를 전담 치료하였다. 이듬해인 1963년에는 방사선의학연구소 부속병원에 Co-60심부치료기가 도입되었고 곧 2대가 추가 설치되어 1일 150명선의 환자를 치료하게 되었다. 1969년 서울대학병원에 국내 최초로 Scinticamera가 도입되어 핵의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1961년 10월 대한핵의학회가 창립되어 내과교수들인 이문호, 황기석이 각각 회장, 부회장으로 추대되었고, 1967년에는 학회지를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주동운저 「臨床放射線科學」발간, 출판문화상 수상
  1962년 주동운저서「臨床放射線科學」이 출간되었는데 이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 발간되는 방 사선과학 교과서였다. 방사선의학을 전공하는 많은 전공의들과 학생들이 우리말로 쓰인 이 저서 덕분에 쉽게 공부를 할 수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으며 저자인 주동운은 그 공로로 출판문화상 을 수상하였다.
   
수도의대에 기술초급대학설립, 방사선사양성
  과거의 방사선사는 고졸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가 종합병원에서 3년간의 기술훈련생으로 근무한 후 면허시험에 합격함으로써 자격을 취득하였다. 1963년 고려의대의 전신인 수도의과대학에 의료기술초급대학이 설립되어 2년간의 학교 교육과 정을 마치고 면허시험에 응시하여 처음으로 정식 교육을 받은 방사선사가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초급대학 설립 후에도 상당기간동안 종합병원의 기술훈련생도 학교 교육과정을 마친 초급대학 졸 업생과 함께 면허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졌다. 이후 계속 신흥, 신구, 동남, 대전 등 전국적으로 많 은 초급대학 또는 기술전문학교가 설립되어 많은 방사선사를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