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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시대별 변천   분야별 변천   인물사   병원별 방사선과의 역사   유관학회 및 단체   방사선 의학산업
 
  방사선의학의 도입
   
서양의학의 도입
  초기 서양의학은 주로 일본인과 기독교 선교의사들을 통해 우리 나라에 전래되기 시작했고, 당시 우리 나라는 1876년 일본과 병자수호조약을, 1882년 3월 한미수호 통상조약의 체결을 시작으로 구미 여러 나라와 국교를 맺게 되어 서양문물을 도입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부산과 인천항이 개항됨에 따라 일인들의 내왕이 잦아지고 부산에는 일본 군의관이 상륙해 일인들과 군속들을 치료하기 위한 제생의원(濟生醫院)이 설립되었다. 당시에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치료의 혜택이 주어지지 않았다.
  1884년 미국 선교의사 Allen H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 온 후 1885년 현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인 광혜원(후에 제중원으로 개칭)을 설립, 서양의술을 전파하고 현대의학 교육을 시작하였다. 한편 조선총독부의원의 전신인 대한의원은 1907년에 설립되었고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설립 후에는 1928년 이 대학의 부속의원이 되었다.
   
X선의 발견
  1895년 11월 8일 독일의 W rzburg 대학 물리학교수인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Wilhelm Conrad Roentgen)은 Crooke-Hittorf관에 고압선을 연결하는 음극선 실험도중 우연히 X선을 발견하여 같은 해 12월 28일 동대학의 물리학회에 이를 발표하였다.
  이 놀라운 발견은 1896년 1월 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발행되는 "Die Press"지에 보도되면서 세계 각국에 알려졌고 곧 바로 인체를 투과하는 성질을 이용해 의학에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X선촬영의 진단적 가치가 입증되었고 그 후 X선촬영장치의 눈부신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X선 촬영기의 국내 도입
  이러한 X선 촬영장치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연대가 명확하지 않으나 1912년(大正1년) 발간된 1911년도 조선총독부의원 연보에 X광선실을 본관1층에 확장설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911년 이전으로 생각되며, 1913년에는 평안남도립평양병원에 X선 촬영장치가 설치되었고, 같은 해에 세브란스의학교 부속병원에 미 Wapler사제 X선 발생장치가 도입 가동되었다. 1916년에는 경상북도립대구병원에도 X선기계가 있었다고 한다.
  1938년 당시 평양의학전문학교 뢴트겐과 강사 原保郞(하라 야스로)는 그가 28개의 주요 관공립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뢴트겐시설에 관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고하였는데, 그의 논문(조선의학회잡지 제28권 1호 112-118)에 의하면, 회답한 24개 병원의 방사선 시설은 모두 31개로 일제기계가 12대, 미제가 12대, 독일제가 7대 였으며, 설치지역 및 연도는 평안남도립평양(1913), 경상북도립대구(1917), 전라남도립광주(1921), 전라북도립군산(1922), 전라북도립전주(1923), 경성적십자병원(1923), 경상남도립마산(1924), 경상북도립김천(1924), 강원도립춘천(1924), 함경남도립혜산진(1924), 충청북도립청주(1925), 경기도립개성(1925), 경기도립수원(1925), 황해도립해주(1925), 평안북도립의주(1925), 함경북도립용정(1925), 평안남도립진남포(1926), 전라남도립제주(1925), 평안북도립강계(1925), 함경남도립원산(1925), 경상북도립안동(1925), 충청남도립대전(1930), 황해도립사리원(1931), 강원도립강릉(1937)이었고 부립부산, 전라남도립순천, 경기도립인천, 함경북도립라남의 4개병원이 회답이 없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 병원의 1개월 필름사용량은 30매 이하가 5개병원, 30-60매가 7개병원, 61-100매가 5개병원, 101-250매가 4개병원, 200매 내외가 4개병원, 460매 이상이 1개병원으로 이는 평양도립병원이었다고 하였다.
   
鈴木元晴(스즈끼 모또하루)의 내한
  일본 방사선과 의사 鈴木의 내한은 1921-1922년 경으로 추정된다. 鈴木는 일본 게이오대학 의학부 藤浪剛一(후지나미)의 수제자로서 총독부의원 의관으로 부임하여 경성의학전문학교와 경성대학 의학부 교수로서 종전때까지 방사선의학의 교육과 진료, 방사선과 시설의 확충, X선기사의 양성 등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또한 조선뢴트겐협회를 창설하였고 흉부뢴트겐진단학, 소화기뢴트겐진단학 등의 저서를 남겼다. 초창기의 X선의학은 독자적 의학의 한 분야로 다루어지지 못하였으나 鈴木가 조선총독부의원에 근무하면서부터 방사선과학 강의를 담당하게 되었다. 세브란스병원의 경우에는 X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의사나 기사가 없었으므로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2회 졸업생인 외과의사 강문집(康文集)이 X선과 일을 겸하였고 뢴트겐과는 외과에서 운영하여 1923년에는 당시 외과교수이던 Hopkirk CC가 과장으로서 근무하였고 일시나마 방사선과학의 강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창기의 X선 촬영기와 이용실태
  처음 조선총독부의원에 설치된 기계는 종류 미상이나 조중삼(趙重參)이 입국한 1936년 총독부의원 후신인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에는 미국 Wapler 회사 제품인 Bellevue호가 있었다. 1925년에는 대구 동산병원에 미국 Victor사 제품 Acme 30mA 장치가 설치되었다.
  1920년대 사용하던 X-ray관구는 가스관구였으나 곧 Coolidge관구로 바뀌었고 뒤에 Sielex관구로 바뀌는 등 기기의 발전이 매우 빨랐다. Coolidge관구는 부피가 크고 열이 많이 발생되어 라디에터로 냉각을 시키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뒤에 나온 관구들은 발생되는 열도 감소되고 mA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현대식에 가까운 관구들이었다.
   
방사선치료기 및 라디움의 도입
  1923년에는 조선총독부의원에 치료용 X선발생장치 "Symmetry"(독일 Siemens 제)가 설치됨으로써 X선은 진단 뿐 아니라 치료분야에도 이용되기 시작하여 방사선치료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조선총독부의원연보(1912년 간행)에 의하면 1912년 라디움의 도입으로 부인암 치료에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기록되어 일찍이 라디움 치료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라디움은 그 후 1930년대에 용산철도병원, 부산부립병원 등 종합병원에 도입되었고 개인병원인 경성부인병원의 工藤(고또)가 라디움치료를 시술하고 있었다.